가후

정치가, 책사,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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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00: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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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
정치가, 책사,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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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과 조위 시대 난세를 살아낸 뛰어난 책사입니다.; 조조를 보좌하여 관도대전 승리 마초·한수 이간책 등 수많은 계책을 성공시켰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으로 당대 최고의 심리전 대가로 불렸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으며 77세에 태위로서 천수를 누렸습니다.; 동탁 이각 등을 보좌하며 후한 멸망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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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가후 출생]

후한 말, 양주 무위군 고장현에서 가후가 태어났다. 그의 자는 문화이다.

양주 무위군 고장현 출신인 가후가 147년에 태어났다. 그의 자는 문화이다.

170

[저족 반란군에게 기지로 생존]

효렴으로 추천되어 관직에 취임했으나 병으로 귀향 중 저족 반란군에 생포되었다. 가후는 기지를 발휘하여 당시 태위 단경의 외손자라고 거짓말하여 자신만 석방되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젊은 시절 효렴으로 추천되어 조정 관직에 취임했으나 병 탓에 귀향하는 도중, 저족 반란군에 생포되었다. 가후는 위세 있는 태위 단경의 외손자라고 순간 거짓말을 하여 저족 반란군이 두려움에 떨며 석방하게 했다. 다른 포로들은 몰살당했다.

189

[동탁에게 병력 과장 계책 제시]

십상시 진압을 위해 낙양에 입성한 동탁의 병력이 적었으나, 가후는 병력이 많아 보이도록 군대를 여러 조로 나누어 반복적으로 입성하게 하는 계책을 냈다. 이로 인해 하진의 부하들은 동탁에게 항복했다.

동탁이 십상시 진압을 위해 낙양에 3천 병력으로 입성했으나, 이미 십상시가 몰살당한 후였다. 동탁은 낙양에 눌러 앉았고, 하진의 부하들은 우왕좌왕했다. 이때 가후는 동탁에게 800명씩 3개 조로 나눠 반복적으로 성 밖으로 나가 숨어있다가 시간차를 두고 북을 울리며 입성하는 계책을 제시했다. 하진의 부하들은 동탁을 돕기 위해 계속 군대가 오는 줄 착각하여 동탁에게 항복했다.

190

[동탁의 장안 천도에 동행]

반동탁 연합군 결성 후 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자, 가후도 그를 따라갔다.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했으며, 가후 역시 동탁을 따라 장안으로 향했다.

192

[이각, 곽사 등을 설득해 장안 점령]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당하자 혼란에 빠진 이각, 곽사 등을 설득하여 장안을 습격하고 다시 정권을 잡게 했다. 이 일로 비판받았으나, 가후는 높은 관직 대신 관리 선발에 힘썼다. 이후 이각의 경계로 단외를 거쳐 장수에게 몸을 의지했다.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되자 이각, 곽사, 장제 등 동탁의 부하들이 동요하며 도망치려 했다. 가후는 이들을 설득하고 단결시켜 장안을 습격해 정권을 다시 잡도록 했다. 이 공적으로 가후는 배송지에게 비판받기도 했으나, 높은 관직에 취임하지 않고 관리 선발에 애썼다. 그러나 이각에게 거북한 존재로 여겨져 동향인 단외에게 의지했다가, 단외가 자신을 두려워하자 장수 밑으로 몸을 옮겼다.

197

[장수를 도와 조조 격파 (완성 전투)]

장수의 참모로 조조와 항전하며 계책을 내어 조조를 여러 차례 격파하고, 조조의 장남 조앙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혔다. 조조의 허허실실 전략에 맞서 복병으로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장수가 조조와 항전할 때 가후의 계략을 쓰면 승리하고 듣지 않으면 패배했다. 조조는 이 전투에서 장남 조앙을 잃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조조가 성곽 서북을 공격하는 척하며 동남을 노리자, 가후는 역으로 복병을 놓아 조조를 유인하려 하는 등 뛰어난 허허실실 전략을 구사했다.

199

[조조에게 투항 권유 및 집금오 임명]

관도 대치를 앞두고 원소와 조조가 장수와 가후를 영입하려 할 때, 가후는 조조가 천자를 받들고 세력이 약해 인재를 중용할 것이라 판단하여 장수에게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권했다. 조조는 가후의 귀순을 기뻐하며 그를 집금오에 임명했다.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 둘 모두 장수와 가후를 영입하려 했다. 가후는 원소는 형제조차 신뢰하지 않고 세력이 강해 자신들을 경시할 것이며, 조조는 천자를 받들고 세력이 열세이므로 과거의 사원(죄악)을 문제 삼지 않고 중용할 것이라 판단하여 장수에게 조조에게 투항하라고 진언했다. 조조는 이들의 귀순을 기뻐하며 가후의 손을 잡고 "내게 천하인들의 신뢰를 가져다준 사람이 바로 그대다"라고 말하며 가후를 집금오에 임명했다.

200

[관도 전투 승리에 기여]

조조의 책사로서 관도 전투에서 결전을 망설이는 조조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책략을 제시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조조를 받들게 된 가후는 관도 전투에서 결전을 앞두고 망설이는 조조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책략을 제시하여 조조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211

[마초-한수 이간책 성공]

서량의 마초와 한수가 반란을 일으키자, 가후는 일부러 글자가 지워진 편지를 한수에게 보내 마초를 의심하게 만들고 둘 사이를 이간시켜 반란군 토벌에 성공했다.

서량에서 마초와 한수가 반란했을 때, 가후는 이들에게 이간책을 썼다. 일부러 군데군데 글자를 지운 편지를 한수에게 보내 마초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이들의 사이를 벌려놓은 뒤 통제되지 않는 틈을 타 습격하여 반란군 토벌에 성공했다.

217

[조조의 후계자 조비 옹립에 기여]

조조의 후계자 문제로 조비와 조식이 경쟁할 때, 가후는 조비에게 겸허하고 성실하게 임할 것을 조언했다. 조조에게는 원소와 유표의 사례를 들어 장남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조비의 태자 지위를 확정시켰다.

조조의 후계자 문제로 조비와 조식이 경쟁할 때, 조비는 가후에게 의견을 구했다. 가후는 조비에게 누구를 대하든 겸허하게 행동하고 태자로서 성실히 임하라고 조언했다. 조조가 은밀히 상담했을 때, 가후는 즉답 대신 원소와 유표가 장남을 후계자로 선정하지 않아 멸망한 사례를 언급하며 조비의 태자 지위를 확정시켰다.

220

[손권의 경고 후 은둔 생활]

손권이 조비에게 가후를 경계하라는 조언을 하자, 가후는 이를 눈치채고 타인의 경계심을 사지 않기 위해 모든 사사로운 교제를 끊고 조용히 은둔하는 삶을 살았다.

손권이 조비에게 가후가 진심으로 섬기지 않고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라고 경고하자, 가후는 이를 귀신같이 눈치챘다. 이후 타인들이 자신의 재능에 경계심을 품지 않게끔 조용히 생활하고 절대로 사사로운 교제를 하지 않았으며, 자녀들의 혼인 상대도 명문대가 출신을 고르지 않았다. 이는 실제 관직을 버렸다기보다는 공적인 생활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낮춘 것으로 해석된다.

[후한의 태위로 임명]

후한의 태위직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220년 음력 2월, 가후는 후한의 태위직에 임명되어 같은 해 음력 10월까지 재임했다.

[조위의 태위로 임명]

조위가 건국되자 초대 태위로 임명되어 천수를 누리다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220년 음력 10월 을묘일, 조위가 건국된 후 가후는 초대 태위로 임명되었다. 그는 223년 음력 6월 갑신일까지 태위로 재임하며 천수를 누렸다.

223

[가후 사망]

77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다 사망했으며, 숙후(肅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223년 음력 6월 갑신일, 가후는 77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다 사망했다. 사망 후 숙후(肅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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