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개

군인, 삼국시대 인물, 강동십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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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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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삼국시대 인물, 강동십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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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나라 건국의 초석을 다진 충직한 노장. - 손견을 시작으로 손책과 손권 삼대에 걸쳐 충성하며 오나라 발전에 기여. - 적벽대전 화공 성공의 핵심 인물이자 고육지계의 주인공. - 뛰어난 행정 능력과 무용으로 지방을 안정시킨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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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황개 출생]

영릉군 천릉현에서 남양태수 황자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자는 공복이다.

중국 후한 말기의 군인 황개는 영릉군 천릉현에서 남양 태수 황자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자는 공복이다.

188

[손견을 따름]

영릉군의 군리로 있다가, 손견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황개는 처음에는 영릉군의 군리로 근무했다. 이후 손견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군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

[산월 토벌 및 민심 안정]

손견 사후 손책과 손권을 따르며, 산월의 반란과 도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여러 현의 수장을 맡았다. 석성현의 부패한 현리 둘을 주살하고, 춘곡현장, 심양현령 등 아홉 현을 안정시켜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며 민심을 얻었다.

손견이 죽은 후, 황개는 손책과 손권을 섬기며 활약했다. 당시 산월족이 복종하지 않고 도적들이 들끓어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 많았는데, 황개는 이러한 현들의 수장을 맡아 문제를 해결했다. 석성현에서는 부정부패가 심한 현리 둘을 처단하여 기강을 바로잡았고, 춘곡현장과 심양현령으로 전임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두 아홉 현을 지키면서 가는 곳마다 질서를 확립하고, 강한 자와 부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와 청렴한 자를 도왔다. 그 결과 산월 사람들조차 황개에게 복종하며 의지했다.

208

[적벽대전 화공 성공]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을 격퇴하기 위해 주유에게 화공을 제안했다. 이후 감택과 주유와 함께 고육지계를 꾸며 조조를 속이고, 동남풍이 부는 날 군량선으로 위장한 배에 불을 질러 조조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는 손권-유비 연합군이 적벽대전에서 승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적벽 전투에서 황개는 주유에게 화공 작전을 제안했고, 이 제안은 채택되었다. 며칠 뒤, 황개는 주유, 감택과 치밀한 각본을 짜 일부러 소동을 일으키고 자신을 해치는 고육지계를 행하여 조조를 완벽하게 속였다. 동남풍이 불던 날, 황개는 조조에게 거짓 투항하여 군량선으로 위장한 날랜 배를 타고 조조 군대에 접근하여 배에 불을 질렀다. 이 화공 작전은 성공적으로 실행되어 조조의 군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이는 손권·유비 연합군이 적벽 대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209

[무릉만 반란 평정]

무릉만의 반란으로 한 군의 성이 점령당하자, 손권은 황개를 태수로 임명했다. 황개는 병사가 적음에도 성문을 열어두어 적을 유인한 뒤 기습하여 수백 명을 참수하고 성을 되찾았다. 반란 우두머리를 주살하고 나머지는 사면하며 경내를 안정시켰다.

무릉만(오계만)이 반란을 일으켜 한 군의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손권은 황개에게 이 지역의 태수를 겸임하게 했다. 당시 황개에게는 병사가 5백 명뿐이라 정면으로 대적하기 어렵다고 판단, 성문을 열어두어 적들이 방심하고 성 안으로 절반쯤 들어왔을 때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로써 적 수백 명을 베어 죽였고, 남은 적들은 모두 도망쳐 점령당했던 성읍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황개는 반란의 우두머리를 처형하고, 그에 동조했던 사람들은 사면하는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이 반란은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졌으나, 황개는 이를 모두 평정했고, 주변 읍장과 군후들이 충성을 맹세하며 군의 경내는 평화로워졌다. 후에 장사군 익양현이 산월의 공격을 받자, 이것도 평정하였다.

215

[황개 사망]

편장군에 더해졌으며, 재임 중 병으로 사망했다. 손권은 그의 아들 황병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다.

황개는 편장군의 직책을 더했으며, 재임 기간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권은 그의 공적을 기려 아들 황병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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