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

정치가, 군인,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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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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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군인,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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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오나라의 핵심 인물.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지략으로 이민족을 평정하고 정예군을 조직함. 관우의 방심을 유도하여 형주를 빼앗고 유비의 대군을 이릉에서 화공으로 격파하며 오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함. 훗날 재상에 올랐으나 후계자 분쟁에 휘말려 손권의 질책 속에 화병으로 사망. 오나라의 위상을 높인 당대 최고의 전략가이자 명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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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종조부 육강의 보호 아래 성장]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읜 육손은 종조부 육강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육강이 원술과 대적하게 되자, 육손은 일족을 이끌고 오나라로 피신했습니다.

육손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종조부인 여강 태수 육강에게 양육되었다. 육강이 당시 크게 세력을 떨치던 원술과 대적하게 되자, 육강은 일족을 육손에게 맡기고 오나라로 피신시켰다.

[육손의 탄생]

후한 말 ~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이자 명장 육손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육의이며, 자는 백언입니다.

183년에 육손(陸遜)이 양주 오군 오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육의(陸議)이며, 자는 백언(伯言)이다. 육손은 대대로 강동 지역을 다스려온 호족 출신이었다.

200

[오나라에서 관직 생활 시작 및 이민족 토벌]

오나라에서 관직에 진출하여 현의 관리가 되었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썼습니다. 또한 이민족의 침략을 격파하며 지원병을 모집하여 군세를 키웠습니다. 손권은 그의 활약에 주목하여 형 손책의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오나라에서 육손은 관직으로 진출하여 현의 관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등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진력하였다. 당시 오나라는 이민족의 숱한 습격으로 평안할 날이 없었는데, 육손은 주민들 가운데 지원병을 모집해 쳐들어오는 이민족을 하나하나 격파하고, 투항하는 자는 자기 군세에 가담시켰다. 육손의 그러한 활동에 주목하던 손권은 그에게 형 손책의 딸을 시집보내어 친분 관계를 맺었다.

219

[여몽을 도와 관우를 처형시키다]

오나라와 촉한의 형주 대립 중, 병든 여몽의 후임이 된 육손은 관우에게 겸손한 서신을 보내 방심하게 했습니다. 관우가 위나라를 침공한 틈을 타 형주를 빼앗고, 결국 관우를 사로잡아 처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오나라와 촉한 간에 형주를 둘러싼 대립이 일어나던 중, 전선 사령관 여몽이 병으로 귀환하자 육손이 그의 후임이 되었다. 육손은 관우에게 매우 겸손한 내용의 서신을 보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안심하고 위나라를 침공한 관우는 여몽의 계략에 허를 찔려 패배하고 사로잡혀 처형되고 말았다. 배잠론에 따르면 손권이 여몽에게 후임을 묻자 여몽은 육손을 추천했고, 손권은 육손을 편장군 겸 우부독에 임명했다. 육손은 번성 전투에서 관우와 협약을 맺기도 했다.

222

[이릉 대전에서 유비의 대군을 격파하다]

관우의 복수를 위해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침공하자, 육손은 대도독으로 임명되어 이릉에서 유비군과 대치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수비와 화공 전략으로 유비군을 격파하여 오나라를 지켜냈습니다.

관우의 죽음 소식을 들은 유비는 복수를 위해 약 5만 혹은 8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침공했다. 손권의 명을 받은 육손은 이이, 유아와 함께 무현, 자귀현을 지켰다. 이듬해 육손은 대도독으로 임명되어 촉한군과 이릉에서 대치하며, 전군에게 수비를 단단히 하고 절대 방심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오랜 대치 끝에 촉한군이 진을 옮기자마자 육손은 즉시 화공을 가하여 유비군을 대파했다.

223

[유비 사후 촉한과 화해 및 위나라 침공 저지]

유비가 병사한 후, 오나라와 촉한은 등지의 조언으로 우호 관계를 회복하고 위나라에 공동으로 대항했습니다. 육손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존재가 되어 위나라의 잦은 침공을 효과적인 전략으로 막아냈습니다.

유비가 병으로 죽자, 오나라와 촉한은 촉한의 사신 등지의 의견을 받아들여 우호 관계를 회복하고 함께 위나라에 대항하게 된다. 손권은 군사 면에서 육손을 오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겼고, 위나라가 종종 오나라를 침공해왔지만 그 때마다 육손의 전략으로 가까스로 저지시켰다.

229

[오나라 황제 즉위에 기여]

오나라 신료들의 맹활약 덕분에 손권은 마침내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었습니다. 육손 또한 오나라의 중요한 군사적 기반을 다지며 황제 즉위에 기여했습니다.

오나라 신료들의 맹활약 덕분에, 마침내 손권은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었다.

244

[오나라의 승상에 임명되다]

육손은 244년에 고옹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승상에 임명되어 최고의 관직에 올랐습니다.

244년, 육손은 고옹의 뒤를 이어 승상에 임명되었다.

[태자 손화를 지지하다]

승상에 오른 육손은 손권의 후계자 분쟁에서 태자 손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는 손권에게 태자를 폐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상소하고 직접 알현하기도 했습니다.

육손은 손화와 손패의 후계자 분쟁에서 이미 태자인 손화를 지지하였고, 손패파의 핵심 인물 전기를 그 아버지 위장군 전종이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 전씨 일족과 사이가 벌어졌다. 육손은 손권에게 상소를 올려 태자를 폐하지 않기를 여러 차례 말했으며, 또 직접 수도 건업으로 가서 손권을 알현하기도 했다.

245

[후계자 분쟁 후유증으로 사망]

전종 부자에게 탄핵당하고, 손권에게 질책받던 육손은 결국 화병으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오나라 후계자 분쟁의 비극적 결과였습니다.

마침내 전종 부자는 육손의 외가며 태자를 지지하는 고담, 고승, 요신 등을 참소하여 유배 보냈고, 또 육손과 편지를 주고받은 오찬은 그로 인해 하옥되어 주살당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손권은 육손을 질책하였다. 육손은 이듬해 63살의 나이로 화병으로 분사했다.

251

[사후 손권의 사과와 소후 시호 추증]

육손이 죽은 뒤에도 손권은 그의 아들 육항을 금고했으나, 육항의 답변에 의심을 풀고 사과했습니다. 경제 대에 이르러 육손은 소후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육손이 죽은 뒤에도, 손권은 양축이 상소한 육손에 대한 20가지 조문을 들어 육항을 금고했으나, 육항이 모두 조리있게 대답하자 그제서야 손권은 육손에 대한 의심을 풀었고, 태원 원년(251년)에 손권은 육항에게 참언으로 육손 부자를 공격한 것을 사과했다. 손휴(경제) 대에 이르러 소후(昭侯)의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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