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

군주, 황제, 창업군주,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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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0: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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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
군주, 황제, 창업군주,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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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동오의 초대 황제 손권은 19세에 급사한 형 손책의 뒤를 이어 강동의 맹주가 되었다. 조조와 유비의 침공을 막아내며 삼국정립의 큰 축을 담당했고 특히 세계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던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을 격파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뛰어난 수성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말년에는 후계 문제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강남 지역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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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손권의 탄생]

동오의 초대 황제 손권이 태어났다.

아버지 손견은 그의 풍모를 보고 고귀한 위치에 오를 상이라며 기뻐했다.

196

[15세 양선현 수장]

손권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양선현의 수장이 되었고, 얼마 뒤 추천을 받아 봉의교위대행 직무를 맡았다.

그의 뛰어난 능력과 도량이 형 손책에게도 인정받았다.

200

[형의 죽음과 집권]

강동의 맹주인 형 손책이 26세의 나이에 자객에게 급사했다.

손책은 19세의 손권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토로장군에 올라 강동을 다스리게 되었다.

202

[조조의 인질 요구 거부]

원소를 격파한 조조가 손권에게 자식을 인질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손권은 주유와 어머니 오씨 부인과 상의 끝에 이를 거부하며 조조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208

[황조 격파와 감녕]

손권이 아버지의 원수인 황조를 세 번째 공격하여 여몽의 활약으로 황조의 수군을 격파했다.

결국 거성을 함락시키고 황조를 죽였으며, 이 과정에서 황조의 부장이었던 감녕을 얻게 되었다.

[적벽대전 대승]

유비와 동맹을 맺은 손권은 조조의 침공에 맞서 항전을 결의했다.

조조의 '세계최대' 수군 80만 군세를 격파하며 삼국정립의 결정적인 기반을 다졌다.

손권은 칼로 책상 모서리를 자르며 항복을 주장하는 자는 책상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

209

[형주 평정 및 혼인 동맹]

주유가 조인을 퇴각시키고 남군을 평정했다.

손권은 조조를 견제할 동맹 세력을 얻고자, 여동생 손부인을 유비와 혼인하게 함으로써 우호 관계를 깊게 하였다.

213

[유수 대치와 조조의 칭찬]

조조가 유수를 침공하자, 손권은 이를 1개월 넘게 저지했다.

손권은 몸소 배에 올라타 조조의 진영을 시찰하는 대담함을 보였고, 조조는 그의 완벽한 군세에 감탄하여 "자식을 낳는다면 손권과 같은 자를 원한다"고 칭찬하며 군사를 퇴각시켰다.

214

[형주 분할 합의]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손권은 형주 반환을 요구하며 여몽을 파견해 장사, 영릉, 계양 세 군을 무력으로 탈취했다.

그러나 조조의 한중 침공으로 유비가 익주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손권과 화해, 형주를 동서로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219

[형주 평정 및 관우 처형]

관우가 양양을 포위하자 손권은 이를 기회로 여몽을 앞세워 형주의 배후를 쳐 기습 점령했다.

결국 관우를 처형함으로써 형주 전체를 손에 넣는 '세계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222

[이릉대전 대승]

육손이 화공으로 유비군을 격퇴시키며 이릉대전에서 '세계최대'의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오나라의 국력을 과시하고 삼국 정립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229

[동오 황제 즉위]

여러 신하들의 권고로 마침내 황제에 즉위하였다.

손권은 이로써 '세계최초'의 동오 황제가 되어 중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손견을 무열황제로 추존하면서, '견(堅)'과 같았던 '진(甄)'의 발음을 바꿔버릴 정도로 황제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려 했다.

230

[타이완 주민 징발 실패]

오나라가 주민 부족에 시달리자 위온과 제갈직에게 타이완 등지의 주민 징발을 지시했다.

그러나 병력 대부분을 잃고 1천 명만 데려오자, 손권은 대노하여 책임자들을 교수형에 처했다.

233

[공손연의 배신]

요동의 공손연이 사자를 파견해 번국의 예를 갖추자 손권은 답례로 병사 1만 명과 금은보화를 보냈다.

그러나 공손연은 오나라 사자를 죽이고 재물을 탈취하며 배신했다.

이로 인해 장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41

[황태자 사망과 내분]

황태자 손등이 죽자 후계 선정을 둘러싸고 손화파와 손패파 간의 심각한 내분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승상 육손을 포함한 많은 신하들이 피해를 입었다.

247

[건초사 건립과 불교 전파]

강승회의 설득을 통해 불교에 귀의한 기념으로 건초사를 지었다.

이후 보은사, 용화사, 감로사 등을 지으며 중국의 강남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250

[후계자 문제 정리]

오랜 내분 끝에 손권은 손화를 황태자에서 폐하고 손패에게 자결을 명하며 일당을 모조리 처형했다.

막내 손량을 새로운 황태자로 삼으며 후계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이 과정에서 손화 폐위를 간언한 수십 명의 신하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252

[손권의 서거]

제갈각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71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정사에서는 말년에 시기심과 살육이 심해졌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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