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
인물, 정치가, 군인, 추존황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4:02:58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 제갈량 북벌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맹달·공손연 등 반란을 진압하며 위나라 안정에 기여. 말년 고평릉 사변으로 위나라 실권 장악 손자 사마염이 진나라 건국하는 기반 마련. 충신의 도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략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후대에도 큰 영향.
179
[사마의 탄생]
위나라의 기반을 다진 사마의가 하내군 온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넓은 식견을 지녔으며, 후한 말의 혼란 속에서 천하를 걱정했다.
200
[조조의 경계심]
조조는 사마의가 큰 뜻을 품었음을 간파하고 경계했다.
특히 사마의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뒤를 돌아보는 '낭고상'을 확인하고, 세 마리 말이 한 구유에서 먹는 꿈(조씨의 曹와 음이 같음)을 꾸며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가 위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 예감했다.
조조는 아들 조비에게 사마의를 경계하라 충고했으며, 사마의는 조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하급 관직의 일까지 밤새도록 수행하며 조조를 안심시켰다.
201
이후 조조가 승상이 되자 다시 사마의를 불렀고, 거절하면 가두겠다는 엄포에 사마의는 두려워하며 문학연에 취임했다. 조조의 아들 조비와 교제하며 황문시랑, 의랑, 승상 동조속, 주부로 승진했다.
219
[손권을 이용한 관우 격파]
관우의 기세가 중원에 미치자 조조가 하북으로의 천도를 고려할 때, 사마의는 장제와 함께 손권과 유비의 불화 관계를 간파하고 손권을 설득하여 관우의 후방을 기습할 것을 건의했다.
이 전략은 채택되어 손권이 여몽으로 하여금 형주를 공격하고 관우를 참수함으로써 번성 포위가 자연히 풀렸다. 이는 사마의의 뛰어난 전략적 식견을 보여준 사례다.
224
[조비의 두터운 신임]
위나라의 태자중서자, 상서, 무군대장군 등으로 승진하며 조비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조비는 "짐이 동쪽에 있을 때는 그대가 서쪽을 맡고, 짐이 서쪽에 있을 때는 그대가 동쪽을 맡으시오"라고 말하며 절대적 믿음을 표현했다.
226
[조비의 고명대신]
조비는 죽음에 임박하여 사마의, 조진, 진군을 불러 황태자 조예에게 이들 신하와 틈이 생기더라도 결코 의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고명대신으로 삼았다.
227
[맹달의 난 진압]
맹달이 모반을 일으키자, 사마의는 서신으로 맹달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주둔지인 완에서 맹달이 있는 상용성까지 8일 만에 급히 행군하여 도착했고, 16일 만에 성을 함락시키고 맹달의 목을 베어 서울로 보냈다.
이는 사마의의 신속한 판단력과 뛰어난 군사적 기동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당시 위나라의 주요 위협 중 하나를 조기에 제거했다.
231
[제갈량과의 첫 대결]
제갈량이 천수를 공격했을 때, 사마의는 장안에 주둔해 도독옹량이주제군사를 맡으며 제갈량과의 첫 대결을 펼쳤다.
그는 촉군의 약점이 식량 보급에 있음을 간파하고 지구전을 펼쳐 촉한군을 퇴각시켰다.
이 승리로 사마의는 명장 제갈량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으나, 장합의 진언을 무시하고 추격했다가 장합을 잃는 실책도 있었다.
234
[오장원 제갈량 사망]
오장원으로 출진한 제갈량을 상대로 사마의는 또다시 지구전을 펼쳤다.
제갈량이 부인용 장신구로 조롱해도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사자에게 제갈량의 안부를 물으며 그의 건강 악화를 눈치챘다.
결국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병사했고, 촉한군은 퇴각했다. 사마의는 퇴각한 촉한군의 진영을 보고 제갈량을 '천하의 귀재'라 평가했다. 이 전투는 삼국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 대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238
[공손연 토벌 승리]
위나라에 반기를 든 요동의 공손연을 토벌하기 위해 4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요수에 의지한 적의 저항을 남쪽 도강 위장술로 뚫고, 양평성을 포위하여 함락시켰다.
당시 큰 비로 진영 침수가 염려되었으나 굳건히 버텨 비가 그치자 맹공격으로 성을 함락했다. 이후 15세 이상 남자 7천 명을 참살하고 2천여 명의 관원과 장수를 주륙하여 경관(해골탑)을 세운, 그의 냉혹하고 단호한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적인 대규모 숙청 사건이다.
249
[고평릉 사변 발생]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은거하다가, 위나라의 실권자인 조상 형제가 위 명제 조예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성을 비운 틈을 타 아들들과 함께 거병하여 조상 세력을 숙청하고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 사건으로 조위 정권은 허수아비가 되었고, 사마씨 가문은 위나라를 찬탈할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251
[사마의 사망]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랜 지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삼국시대의 중요한 한 시대의 마감을 알렸다.
265
[고조 선황제로 추존]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265년)하자, 사마의는 진나라의 기틀을 다진 공로를 인정받아 '고조 선황제'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