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진
군인, 장군, 삼국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04
• 몸은 작지만 담력이 뛰어났던 조조의 명장. • 오자양장 중 한 명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선봉에 서 혁혁한 공을 세움. • 특히 복양 하비 관도 합비 등 주요 전투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 • 용맹함과 과감함으로 이름 높았으며 병사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전략적 통찰력을 겸비. • 최종 관직은 우장군 시호는 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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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양 전투 활약 및 봉후]
조조를 따라 복양 전투에서 여포와 싸울 때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이 활약으로 광창정후에 봉해지며 악진은 조조 휘하에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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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전투 종군]
악진은 하비에서 여포를 정벌하는 전투에 종군하며 조조군의 결정적인 승리에 기여했다.
이는 삼국시대 초기 주요 인물들을 상대한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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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견 전투 수고 격파]
장양 사후 원소에 속했던 수고(휴고) 세력을 사환, 조인과 함께 사견에서 쳐부수며 조조의 세력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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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평정 및 승진]
패에서 서주를 들어 거병한 유비를 조조가 평정할 때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토구교위로 승진하며 악진의 군사적 능력이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관도 대전 핵심 활약]
중국의 판도를 가른 대규모 결전, 관도 대전에서도 활약하며 조조군이 원소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의 용맹함은 전장에서 빛을 발했다.
[백마/연진 전투 맹활약]
관도 대전의 서막인 백마/연진 전투에서 우금과 5천 명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원소군을 유인했다.
연진 일대 30여 둔을 불사르고 수천 명을 죽이거나 생포하며, 적장 하무, 왕마 등 20여 명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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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 전투 및 유격장군]
202년부터 203년까지 이어진 여양 전투에서 원담, 원상 형제와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적장 엄경을 베는 큰 공을 세웠고, 이로 인해 유격장군을 겸임하며 조조군의 핵심 장수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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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안 공격과 주민 이주]
여양 전투 이후, 조조군이 업 함락에 실패하고 돌아올 때 장료와 함께 음안을 공격하여 그 주민들을 황하 이남으로 이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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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피 전투 동문 돌입]
남피 전투에서 가장 앞장서서 동문으로 돌입하여 원담을 격멸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는 원소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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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관 공략 성공]
병주자사 고간이 호관을 틀어막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전과 함께 상당으로 나아가 호관을 공격했다.
이후 조조가 합류하여 마침내 호관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웠다.
[해적 관승 토벌 및 승진]
조조를 수행해 순우로 간 다음 이전과 함께 해적 관승을 토벌하고 바닷가 지역을 성공적으로 정리했다.
이 뛰어난 공로로 절충장군에 임명되며 악진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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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수비 및 관우 격퇴]
조조가 형주를 확보한 후 양양을 지키는 핵심 임무를 맡았다.
문빙과 힘을 합쳐 관우, 소비 등을 격퇴하며 남군 일대의 만인들이 조조에게 귀부하는 큰 성과를 이끌어냈고, 유비 휘하의 현장 두보, 양대까지 격파하며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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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 정벌 종군 및 가절]
손권 정벌에 종군하여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가절(假節)을 받았고, 이후 장료, 이전과 함께 오나라와의 주요 격전지인 합비를 수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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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비 전투 대승과 우장군]
손권이 무려 10만 대군으로 합비를 포위하자, 단 7천 명의 병력으로 장료, 이전과 힘을 합쳐 방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다.
평소의 불화를 뒤로하고 대승을 거두며 손권군을 막아내는 역사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이 엄청난 공로로 식읍 500호를 더 받아 총 1,200호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우장군까지 오르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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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진의 사망]
건안 23년(218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수많은 공적을 기려 위후(威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조조 휘하에서 맹활약하며 삼국시대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명장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