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진

군인, 장군, 삼국지 인물

num_of_likes 71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0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군인, 장군, 삼국지 인물
report
Edit

• 몸은 작지만 담력이 뛰어났던 조조의 명장. • 오자양장 중 한 명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선봉에 서 혁혁한 공을 세움. • 특히 복양 하비 관도 합비 등 주요 전투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 • 용맹함과 과감함으로 이름 높았으며 병사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전략적 통찰력을 겸비. • 최종 관직은 우장군 시호는 위후.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4

[복양 전투 활약 및 봉후]

조조를 따라 복양 전투에서 여포와 싸울 때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이 활약으로 광창정후에 봉해지며 악진은 조조 휘하에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5

[옹구 전투 참여]

옹구에서 장초와의 전투에 선봉으로 참여하여 용맹함을 보였고, 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공을 세웠다.

197

[호 전투 선봉 활약]

호에서 교유와 싸울 때도 선봉에 서서 뛰어난 용맹함으로 적과 맞서 싸워 승리에 기여했다.

198

[안중 전투 종군]

안중에서 장수와의 전투에 조조군 일원으로 종군하여 작전을 수행하며 공적을 쌓았다.

[하비 전투 종군]

악진은 하비에서 여포를 정벌하는 전투에 종군하며 조조군의 결정적인 승리에 기여했다.

이는 삼국시대 초기 주요 인물들을 상대한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199

[사견 전투 수고 격파]

장양 사후 원소에 속했던 수고(휴고) 세력을 사환, 조인과 함께 사견에서 쳐부수며 조조의 세력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0

[유비 평정 및 승진]

패에서 서주를 들어 거병한 유비를 조조가 평정할 때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토구교위로 승진하며 악진의 군사적 능력이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관도 대전 핵심 활약]

중국의 판도를 가른 대규모 결전, 관도 대전에서도 활약하며 조조군이 원소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의 용맹함은 전장에서 빛을 발했다.

[백마/연진 전투 맹활약]

관도 대전의 서막인 백마/연진 전투에서 우금과 5천 명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원소군을 유인했다.

연진 일대 30여 둔을 불사르고 수천 명을 죽이거나 생포하며, 적장 하무, 왕마 등 20여 명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202

[여양 전투 및 유격장군]

202년부터 203년까지 이어진 여양 전투에서 원담, 원상 형제와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적장 엄경을 베는 큰 공을 세웠고, 이로 인해 유격장군을 겸임하며 조조군의 핵심 장수로 자리매김했다.

203

[음안 공격과 주민 이주]

여양 전투 이후, 조조군이 업 함락에 실패하고 돌아올 때 장료와 함께 음안을 공격하여 그 주민들을 황하 이남으로 이주시켰다.

204

[업성 포위전 참여]

원소의 마지막 거점인 업성을 포위하는 대규모 전투에 참여하여 조조가 하북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일조했다.

205

[남피 전투 동문 돌입]

남피 전투에서 가장 앞장서서 동문으로 돌입하여 원담을 격멸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는 원소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승리였다.

[옹노 격파]

남피 전투 이후 별도로 옹노 지역의 적들을 격파하며 조조의 통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206

[호관 공략 성공]

병주자사 고간이 호관을 틀어막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전과 함께 상당으로 나아가 호관을 공격했다.

이후 조조가 합류하여 마침내 호관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웠다.

[해적 관승 토벌 및 승진]

조조를 수행해 순우로 간 다음 이전과 함께 해적 관승을 토벌하고 바닷가 지역을 성공적으로 정리했다.

이 뛰어난 공로로 절충장군에 임명되며 악진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208

[양양 수비 및 관우 격퇴]

조조가 형주를 확보한 후 양양을 지키는 핵심 임무를 맡았다.

문빙과 힘을 합쳐 관우, 소비 등을 격퇴하며 남군 일대의 만인들이 조조에게 귀부하는 큰 성과를 이끌어냈고, 유비 휘하의 현장 두보, 양대까지 격파하며 전공을 세웠다.

209

[손권 정벌 종군 및 가절]

손권 정벌에 종군하여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가절(假節)을 받았고, 이후 장료, 이전과 함께 오나라와의 주요 격전지인 합비를 수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215

[합비 전투 대승과 우장군]

손권이 무려 10만 대군으로 합비를 포위하자, 단 7천 명의 병력으로 장료, 이전과 힘을 합쳐 방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다.

평소의 불화를 뒤로하고 대승을 거두며 손권군을 막아내는 역사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이 엄청난 공로로 식읍 500호를 더 받아 총 1,200호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우장군까지 오르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218

[악진의 사망]

건안 23년(218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수많은 공적을 기려 위후(威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조조 휘하에서 맹활약하며 삼국시대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명장으로 기억된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