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료
삼국시대 인물, 장군, 군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8:59
장료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를 대표하는 맹장이자 지략가. 초기에 여러 세력을 전전하다 조조에게 귀순하여 위나라의 핵심 장수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합비 전투에서 800명의 정예병으로 10만 대군을 격파하며 경이로운 전술을 선보였고 울던 아이도 장료 온다는 말에 울음을 그친다는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뛰어난 무력과 담력은 물론 공과 사를 구분하고 의리를 지킨 명장으로 평가받습니다. 조조의 오자양장(五子良將)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위나라의 강력한 발톱이자 어금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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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상·북지태수 겸임]
여포를 따라 서주까지 가서 28살의 나이에 노국상(魯國相)과 북지태수(北地―)를 겸임하며 중요한 관직을 맡았습니다.
이로써 그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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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성 점령 및 조조 귀순]
고순과 함께 하후돈을 격파하고 유비의 패성(沛城)을 점령했습니다.
이후 여포가 토벌되자 조조에게 항복하여 중랑장과 관내후를 받으며 새로운 주군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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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 대전, 안량 격파]
원소와의 관도 대전에서 장료와 관우는 선봉에 서서 원소군의 맹장 안량을 베는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공으로 비장군에 오르며 조조 휘하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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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희 설득 성공]
동해군의 창희를 포위 공격했으나 난항을 겪던 중, 장료는 홀로 창희를 만나 설득하여 투항시키는 뛰어난 외교술과 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조조에게도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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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산 전투 대승]
원상과 오환족 연합군과의 백랑산 전투에서 장료는 적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장합과 함께 선봉에서 돌격하여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 전투로 원소 세력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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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현 반란 진압]
영천군 장사현 주둔 중 야간에 발생한 반란에서, 장료는 침착하게 주동자를 파악하고 수십 명의 측근과 함께 신속히 진압하여 병사들의 동요를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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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란·매성 토벌 성공]
육안에서 반기를 든 진란과 매성을 장합 등과 함께 토벌했습니다.
험난한 산악 지형을 뚫고 적의 근거지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반란군을 전멸시키며 식읍이 늘고 가절 권한을 받았습니다.
매성은 처음 우금에게 거짓 항복했으나, 후에 진란에게 합류하여 저항했습니다. 우금은 장료에게 군량을 보급하고, 장패는 오나라의 지원을 차단하며 장료의 작전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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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비 전투: 전설의 시작]
손권의 10만 대군이 합비를 포위하자, 조조의 교서에 따라 장료는 악진, 이전과 함께 단 800명의 정예병으로 선제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돌격하여 손권의 지휘 막사까지 유린, 적의 사기를 완전히 꺾으며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이 작전은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료의 과감한 결단력과 이전을 비롯한 동료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손권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포위망에 갇힌 병사들을 다시 구출해내는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전투 후 '울던 아이도 장료 온다는 말에 울음을 그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오나라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조는 이 공로를 크게 치하하며 정동장군에 임명했습니다. 이 전투는 800명으로 10만 대군을 무력화시킨 세계최초, 전무후무한 대승리로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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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구 전투 참여]
오나라와의 유수구 전투에서 장패와 함께 선봉으로 참전했습니다.
전투 후에는 하후돈 등과 함께 거소(居巢)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며 위나라 국경 방어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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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 구원군 파견]
관우가 번성의 조인을 포위하자 조조의 명을 받아 구원군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비록 도착 전에 서황이 관우를 물리쳐 포위를 풀었지만, 조조 진영에 합류하여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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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 즉위 후 대우]
조비(위 문제)가 위왕에 오른 후 전장군으로 임명되며 오히려 관직이 강등되는 듯했으나, 곧 도향후에 봉해지고 다시 합비에 주둔했습니다.
조비는 장료의 어머니에게 수레를 하사하고 가족을 전송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베풀었습니다.
이후 황제 즉위와 함께 진양후로 승격되며 식읍이 늘어 2,600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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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극진한 문병]
오나라가 칭번한 후 옹구로 돌아와 병을 앓게 되자, 문제는 시중과 태의를 보내어 장료의 상태를 살피게 하고 끊임없이 문안을 보냈습니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직접 행재소로 불러 손을 잡고 위로하며 황제의 옷과 음식을 하사하는 등 극진한 보살핌을 베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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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중 병사]
문제의 오나라 남정에 참전하여 해릉으로 향했습니다.
손권이 장료를 심히 꺼리며 경계를 당부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였으나, 결국 강도에서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강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