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돈
장군, 정치인, 후한 말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8:51
조조가 거병했을 때부터 함께한 최측근이자 개국공신. 한쪽 눈을 잃고도 싸운 맹장이자 후방을 굳건히 지킨 전략가.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조조의 깊은 신임을 얻었으며 위나라 초대 대장군에 올랐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호쾌한 맹장으로 묘사되며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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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첫 사마 임명]
조조가 반동탁 연합군의 일원으로 거병하여 분무장군을 칭했을 때, 하후돈은 사마로 임명되며 조조의 최측근으로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병사 모집과 동군 태수 겸직 등 조조의 초기 세력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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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양 수비와 실명]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러 간 사이, 복양을 지키던 하후돈은 여포의 난에 직면했다.
적은 병력으로 견성을 사수하던 중 인질극을 겪었으나 부하 한호의 활약으로 구출되었다.
이후 조조와 함께 복양에서 여포군과 싸우던 중 화살에 맞아 왼쪽 눈을 잃어 '맹하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 별명을 싫어했으며, 소설에서는 눈을 삼키는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된다.
조조 가족이 있는 견성에서 순욱의 호출로 여포와 싸웠다. 여포가 복양을 점거하고 물자를 확보하자 하후돈은 견성에서 장막과 연동하려던 자들을 처단하였다. 이 과정에서 항복을 가장한 자들에게 사로잡혀 인질극에 휘말렸으나, 부하 한호가 흔들리는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과감히 공격하여 하후돈을 구출했다. 조조가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복양 전투에서 유시에 맞아 왼쪽 눈을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땅에 내던질 정도로 이 별명을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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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박망파 복병 패배]
하남윤으로 전임되어 조조의 후방을 지키던 중, 유비가 섭현까지 치고 올라오자 그를 막으러 출진했다.
이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를 추격했다가 박망에서 복병에 당할 뻔했으나, 이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조조가 여양에서 원담·원상 형제와 싸우는 동안, 유표에게 의탁하던 유비가 섭현까지 진출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유비가 박망으로 퇴각하자 이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금과 함께 쫓아갔다가 복병에 당하였다. 이때 진영에 남아있던 이전이 구원하러 달려와 유비를 물리쳐 하후돈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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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의 난 진압 기여]
조조가 오환을 상대하는 틈을 타 병주자사 고간이 호관을 틀어막고 남하하려 하자, 사례교위 종요와 함께 이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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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읍 대폭 증액]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식읍 1,800호가 추가되어 총 2,500호를 받게 되었다.
이는 그의 지대한 공적과 조조의 깊은 신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때 백랑산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전주가 봉작을 강하게 거부하자 평소의 친분을 바탕으로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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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관 기적의 승리]
장로 정벌 중 양평관에서 고전하며 퇴각을 결정했는데, 후군에서 병사를 불러오던 중 고조 부대가 밤에 실수로 장위군 진영으로 진입했다.
마침 사슴 떼가 돌진하고 북과 피리가 울리자 장위가 놀라 도망쳐 뜻밖의 승리를 거두었다.
조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 동생 장위가 수만 명을 거느리고 양평관에서 항전했다. 조조군은 여러 진지를 공격했지만 공략에 실패하고 사상자만 늘었으며 군량까지 떨어져 퇴각을 결정했다. 하후돈과 허저는 후군에 남아 산 위의 흩어진 병사들을 불러오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고조가 지휘하던 최전선 부대가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밤에 그만 장위군의 진영으로 잘못 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사슴 수천 마리가 갑자기 돌입하고, 잘못 들어간 고조 부대도 북과 피리를 울리자 장위가 크게 놀라 도망치는 바람에 조조군은 뜻밖의 승리를 거두었다. 하후돈과 허저는 신비, 유엽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216
[오 방어와 특별 대우]
유수구 전투에 종군한 후, 26군을 이끌고 거소에 주둔하며 손권을 방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조조는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위강보다 낫다'며 기악명창을 내리는 등 각별한 신뢰를 보였다.
216년 유수구 전투에 종군했다. 다음 해 조인, 장료, 장패 등 26군을 거느리고 거소(지금의 안후이성 차오후시)에 주둔하며 손권을 방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때 조조는 '위강은 서융과 화평한 공으로도 종과 경을 받았는데 하물며 장군이야 오죽하겠나!'라고 말하며 기악명창(伎樂名倡)을 주어 그의 공로와 충성심을 높이 평가했다. 이후 전장군에 올라 소릉에 주둔했다.
220
[위나라 초대 대장군]
조조가 사망한 후, 조비가 위왕에 오르자 하후돈은 위나라의 초대 대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조조와 같은 해인 220년 4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충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는 그가 조조 시대의 마지막을 함께한 최고위 인물임을 보여준다.
220년(연강 원년)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왕에 오르자 하후돈을 대장군에 임명했다. 4월 죽었으며, 시호는 충후(忠侯)라 하였다. 말년에 다른 장수들이 모두 위나라 관직을 받을 때 혼자만 여전히 한나라 관직이었다. 그는 신하의 예에 어긋난다며 상소했고, 조조가 '그 덕만 귀히 여기면 되오. 어찌 구구한 위나라 관직에 연연하시오?'라고 만류했음에도 고집스레 청하여 전장군에 임명되었다. 이는 그의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과 충성심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출정할 때도 스승을 모셔서 학문을 익혔으며, 재물이 생기면 주위에 나누어주고 관청에서 타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