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연

중국, 삼국시대, 군인,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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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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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군인,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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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은 재빠르고 과감한 기동이 장기였던 조조 휘하의 용맹한 장수입니다. 그는 사흘에 5백 리 엿새에 1천 리를 간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빠른 기동력을 자랑했습니다. 마초 한수 등 서량 세력과 이민족을 평정하며 농우 지역을 안정시켰고 오랫동안 반독립 세력이었던 송건을 단 한 달 만에 무찌르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중 수비를 맡아 유비와 대치하던 중 정군산에서 황충의 기습에 최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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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조조군의 믿음직한 기둥]

조조 거병 초기부터 별부사마, 기도위로 활약하며 진류, 영천 태수를 역임했습니다.

관도대전에서는 연주, 예주, 서주 지역의 군량 조달을 책임졌고, 이후 장료와 함께 동해의 창희를 공격하며 최전선과 후방 지원을 오갔습니다.

209년에는 여강의 뇌서를 격퇴하는 등 꾸준히 조조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며 그의 '빠른 조치'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211

[마초와의 대격돌, 동관 전투]

정서호군으로서 태원의 도적 상요를 처단한 하후연은 한중의 장로를 정벌하라는 조조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자신들을 겨냥한 것으로 오해한 마초와 한수 등 서량 세력이 동관으로 진격하며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위남에서 마초 세력과 격전을 벌인 하후연은 서황, 주령과 함께 저족을 무찌르고 안정에서 양추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관중 지역의 평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12

[마초의 숙적, 기성 구원]

마초가 기성을 포위하자 하후연은 구원군을 이끌었으나 적시에 도착하지 못해 양주자사 위강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강서, 윤봉 등과 연합하여 마초를 기성에서 몰아내고 한중으로 도주하게 만들었습니다.

214년 마초가 다시 기산을 포위하자, 하후연은 본대보다 늦게 도착할 것을 우려해 장합에게 선봉을 맡기고 직접 빠르게 출진하여 마초가 싸우지 않고 물러나게 했습니다.

214

[농우 땅을 호령하다]

한수를 약양성까지 추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약양과 흥국을 휩쓸었습니다.

특히, 30여 년간 반독립적으로 통치했던 자칭 하수평한왕 송건의 부한현을 단 '한 달 만에' 함락시키고 그 일당을 처단하는 세계적 수준의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하서의 강족까지 모두 조조에게 투항하여 농우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으며, 이 공로로 가절을 받았습니다.

215

[한중 최전선 사령관]

무도의 저족과 강족을 공격해 십여만 곡의 곡물을 탈취한 후, 조조의 장로 정벌에 참전하여 이민족들을 위압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장로가 항복하고 한중이 평정되자, 조조는 하후연을 도호장군 겸 정서장군으로 임명하여 한중의 수비를 총괄하게 하며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장합, 서황 등 최고의 장수들을 휘하에 두고 한중 요새 방어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219

[정군산의 마지막 전투]

218년 유비가 양평관으로 진군해 오자 하후연은 정서장군으로서 맞서 대치했습니다.

다음 해 1월, 유비가 면수를 건너 정군산에 진지를 구축하자 밤에 그의 녹채에 불을 질러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동쪽 방어는 장합에게 맡기고 자신은 남쪽 방어를 지휘하며 녹채 복구를 직접 감독하던 중, 황충의 기습 공격을 받아 최전선에서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조조군에게 큰 타격이었으며, '민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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