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충

군인, 장군,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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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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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장군,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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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한의 용맹한 오호대장군 중 한 명. - 백발노장의 대명사로 불리며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침. - 정군산 전투에서 조조의 명장 하후연을 격파하며 유비의 한중 쟁탈전에 결정적 기여. -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와의 명승부와 이릉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로 깊은 인상을 남김. - 뛰어난 활 솜씨와 용맹함으로 삼군(三軍)의 으뜸이라 칭송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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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유표 휘하에서 중랑장으로 활동]

형주목 유표 휘하의 중랑장으로 임명되어 유반과 함께 유현을 수비하며 군인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형주 남양군 사람인 황충은 형주목 유표에게 중랑장으로 임명되어 유반과 함께 유현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아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208

[조조군 휘하에서 비장군 대행]

조조가 형주를 점령하자 임시로 비장군 직을 대행하며, 장사태수 한현의 휘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조조가 형주를 점령한 이후, 황충은 임시로 비장군 직을 대행하게 되었고, 이전에 맡았던 임무를 계속 수행하며 장사태수 한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209

[《삼국지연의》 속 관우와의 감동적인 대결]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장사를 공략할 때 황충과 대결했습니다. 황충은 낙마했지만 관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보답으로 다음 대결에서 활로 관우의 투구만을 쏘아 보답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장사를 공략할 때 황충과 대적합니다. 오랜 공방 끝에 황충의 말이 부상을 입어 낙마했으나, 관우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해 황충을 도와주었습니다. 이에 감복한 황충은 태수 한현의 명령으로 관우를 활로 쏘아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고뇌 끝에 다음 대결에서 그의 장기인 활로 관우의 투구만을 쏘아 은혜를 갚았습니다.

[《삼국지연의》 위연의 도움으로 유비에 귀순]

《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쏘지 않아 한현에게 처형될 위기에 놓이자, 위연의 도움으로 구출됩니다. 이후 유비가 직접 찾아와 요청하자 감복하여 충성을 맹세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쏘지 않은 죄로 한현에게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놓이자, 동료 위연이 민중을 선동해 한현을 살해하고 성문을 열어준 덕분에 황충은 처형을 면했습니다. 이후 주군 한현에 대한 충성을 지켜 유비와의 만남을 피했으나, 유비가 직접 찾아와 간곡히 요청하자 그의 신망과 인덕을 인정하고 저항한 것을 사죄하며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211

[유비에게 귀순 및 촉 평정 참여]

유비가 남쪽 여러 군을 평정할 때 황충이 마침내 유비에게 귀순했습니다. 이후 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가 유장 공격의 선봉에서 용맹을 떨쳤습니다.

유비가 남쪽의 여러 군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황충은 유비에게 몸을 맡기기로 결심하고 그를 따랐습니다. 촉으로 들어간 후 가맹에서 임무를 받아 유장을 공격할 때, 황충은 늘 앞장서서 적진에 올라 함락시켰으며, 그 용맹과 굳셈은 삼군에서 으뜸으로 꼽혔습니다.

214

[익주 평정 후 토로장군 임명]

익주가 평정된 후, 황충은 그 공을 인정받아 토로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황충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토로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215

[《삼국지연의》 촉 공략과 한중 쟁탈전에서 활약]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촉 공략 시 위기에 빠진 위연을 구하고, 한중 쟁탈전에서는 엄안과 함께 노익장으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황충은 유비의 촉 공략을 수행할 때, 공을 세우려다 위기에 빠진 위연을 구하며 아군이 궁지에 빠지는 상황을 막았습니다. 또한 한중 쟁탈전에서는 같은 노익장으로 불리는 엄안과 짝을 이루어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219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 전사시키고 정서장군 승진]

건안 24년(219년),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의 정예 군대를 상대로 앞장서서 돌격, 하후연을 크게 무찌르고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공으로 정서장군에 올랐습니다.

건안 24년(219년), 황충은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이 이끄는 정예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황충은 적의 예봉을 꺾으며 사졸들을 격려해 진격했고,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환성이 골짜기를 뒤흔드는 가운데, 단 한 번의 싸움으로 하후연을 크게 무찌르고 전사시켰습니다. 이 혁혁한 공로로 그는 정서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한중왕 유비에게 후장군으로 임명]

219년,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황충을 후장군으로 임명하려 했습니다. 제갈량은 관우의 반발을 우려했으나, 유비는 직접 관우를 설득하여 황충을 관우 등과 나란한 지위에 두고 관내후 작위를 내렸습니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이 된 후 황충을 후장군으로 임명하려 하자, 제갈량은 황충의 명망이 관우, 마초와 동등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관우가 불만을 가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관우를 직접 설득하겠다고 하며 황충을 관우 등과 동등한 지위에 두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실제로 관우는 불평했으나, 유비는 하후연 사살의 공로를 설명하여 설득했습니다.

220

[생을 마감, 시호는 강후]

220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강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아들 황서는 일찍 죽어 후사가 없었습니다.

220년 황충은 세상을 떠났고, '강후(剛侯)'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들 황서는 일찍 사망하여 황충에게는 더 이상 후사가 없었습니다.

222

[《삼국지연의》 이릉 전투에서 용맹하게 전사]

《삼국지연의》에서 222년 이릉 전투 중 유비의 말을 듣고 분기, 무모하게 적진 깊이 침입했다가 마충의 화살을 맞고 부상. 유비의 사죄를 받으며 75세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222년 이릉 전투에서 황충은 유비가 "노인이 나서봤자 소용없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분기했습니다. 적은 군세에도 불구하고 오나라 진지를 공격하며 반장과 힘겹게 싸웠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적진 깊이 침입했다가 마충의 화살을 어깨에 맞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유비는 "내가 서운한 말을 해서 그대가 이런 일을 겪었다"며 사죄했고, 황충은 유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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