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 (서진)

역사가, 관리,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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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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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관리,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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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삼국시대의 격동기를 기록한 역사서 삼국지의 저자 • 촉한의 관료였으나 서진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활약 • 엄격한 고증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후대 사학자들의 극찬을 받음 •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위대한 역사서를 남긴 인물 • 중국 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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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진수의 탄생]

진수는 중국 익주 파서군 안한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서기 233년,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익주 파서군 안한현에서 진수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자는 승조였으며, 훗날 중국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250

[촉한 관직 퇴출]

촉한에서 관직 생활 중 환관 황호의 핍박으로 관각영사 벼슬에서 물러났습니다.

진수는 촉한의 관각영사로 재직하며 관료 생활을 시작했으나, 당시 권력을 휘두르던 환관 황호의 핍박과 모함으로 인해 관직에서 쫓겨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는 촉한의 국력이 점차 약해지던 때였습니다.

280

[서진 관직 등용 및 시작]

서진이 천하를 통일한 후 사공 장화의 추천으로 진나라 관리가 되어 좌저작랑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진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 진수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사공 장화의 강력한 추천으로 진나라의 관료로 등용되었습니다. 그는 좌저작랑을 시작으로 양평령, 저작랑, 파서군중정 등 여러 중요한 관직을 거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삼국지》 편찬 착수]

삼국시대의 방대한 자료들을 집대성하여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 《삼국지》를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수는 삼국시대에 관련된 수많은 기록과 저작들을 수집하고 면밀히 검토하여, 후대 역사 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될 《삼국지》를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서진의 신하였기에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아 기술했으며, 촉한 출신이었기에 촉나라에 대한 기록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그의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대업이었습니다.

285

[장광 태수 전임]

사공 장화의 지속적인 추천에도 불구하고, 정적들의 훼방으로 인해 장광 태수로 좌천되었습니다.

진수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사공 장화는 그를 황제에게 거듭 추천하여 더 중요한 요직에 앉히려 했습니다. 그러나 순욱 등의 정적들이 이를 방해했고, 결국 진수는 중앙 관직에서 물러나 지방직인 장광 태수로 전임되는 좌천을 겪게 되었습니다.

290

[치서시어사 임명]

황제가 진수의 재능을 다시 인정하여 그를 중앙의 중요한 관직인 치서시어사에 임명하며 중용했습니다.

장광 태수로 전임되었던 진수는 시간이 흘러 다시 황제에게 그 뛰어난 재능과 학식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황제의 특명으로 그는 다시 중앙의 요직인 치서시어사에 임명되며, 국가의 중요한 문서와 역사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295

[모친상 및 논란 발생]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을 버리고, 모친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낙양에 매장했으나 향당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진수는 모친의 별세 소식에 관직을 버리고 효도를 다했습니다. 모친은 유언으로 고향이 아닌 낙양에 묻히기를 원했고, 진수는 그 유언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예법상 고향에 부모를 매장하는 것이 도리였으므로, 진수의 행동은 고향 사람들의 거센 비난을 받으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297

[다수 저작 편찬 및 사학 공헌]

《삼국지》 외에도 《고국지》, 《익부기구전》 등 다수의 저작을 편찬하며 중국 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진수는 그의 대표작인 《삼국지》 외에도 《고국지》 50편, 《익부기구전》, 《관사론》, 《석휘》, 《광국론》, 《촉상제갈량집》 등 여러 방대한 저술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저작들은 중국 고대 역사와 지리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며, 중국 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진수의 사망]

중국 삼국시대와 서진의 위대한 역사가 진수가 사망했습니다.

진수는 서기 297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망 후에도 《진서》에서는 그를 반고와 사마천을 잇는 위대한 역사가로 평가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과 사학에 대한 공헌을 높이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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