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휘

고려 인물, 반역자, 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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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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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물, 반역자, 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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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동북면의 토착 사족 출신으로 몽골 침략 시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투항하며 쌍성총관부 설치에 기여한 인물. 쌍성총관부의 초대 총관이 되어 그의 가문이 4대에 걸쳐 약 99년간 쌍성총관부를 세습하며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그의 손녀딸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부 이춘에게 시집가 조선 건국과도 연결되는 흥미로운 역사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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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

[몽골 투항 및 쌍성총관부 설치]

몽골군이 화주 지역을 침략하자, 조휘는 탁청과 함께 강원도 일대 여러 성 사람들을 선동하여 몽골에 투항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고려 관료들을 살해하고 고주까지 점령하며 화주 이북 지역을 몽골에 바쳤다.

몽골은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으로, 탁청을 천호로 임명했다.

1258년 몽골군이 화주 지역을 침략했을 때, 조휘는 정주 출신 탁청과 함께 등주, 문주 등에 있는 여러 성 사람들을 선동하여 몽골군에게 투항하게 했다. 그들은 동북면병마사 신집평과 박인기, 김선보 등 고려 관료들과 경별초의 군사들을 살해하고 고주까지 점령했다. 그 후 화주 이북 지역을 몽골에 바치자 몽골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조휘를 총관으로, 탁청을 천호로 임명했다.

1259

[한계성 전투 패배 및 약탈]

조휘는 등주와 화주의 사람들과 함께 몽골병을 이끌고 한계성을 공격했으나, 고려 방호별감 안홍민이 거느린 야별초에게 크게 패배했다.

또한 고려 왕이 몽골군에게 보낸 사절단의 선물을 약탈했으나, 이는 다시 고려군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1259년 조휘는 등주와 화주의 사람들과 함께 몽골병을 인도하여 한계성을 치려고 했으나 방호별감 안홍민이 거느리고 나온 야별초에게 섬멸당했다. 같은 해 고려 왕이 몽골군에게 보낸 사자 김기성 일행과 선물을 보룡역에서 약탈하였으나, 동진국의 군사와 함께 춘주의 천곡촌에서 머물다 신의군의 군사들에게 다시 빼앗겼다. 또한 양주에서 난민들이 요청하자 군사 400을 내어주어 양주 수령 지주사를 잡아가게 하기도 했다.

1273

[사망 및 가문의 세습]

조휘가 사망했다.

그가 죽은 후 쌍성총관부는 그의 아들 조양기, 손자 조림, 증손 조소생까지 4대에 걸쳐 그의 집안 후손들이 세습하며 약 99년간 지배했다.

조휘는 1273년에 사망했으며, 그가 몽골에 투항한 이후 세워진 쌍성총관부는 그의 증손 조소생이 1356년 고려군에게 쫓겨날 때까지 4대에 걸쳐 99년 동안 조휘 집안의 후손들이 세습하였다. 천호 자리 또한 탁청의 후손들이 세습했다.

1356

[쌍성총관부, 고려에 탈환]

조휘의 증손이자 제4대 쌍성총관인 조소생이 고려의 유인우 장군을 비롯한 고려군에게 쫓겨나면서, 조휘 가문의 4대 99년 세습으로 이어지던 쌍성총관부의 지배가 막을 내렸다.

1356년, 조휘의 증손이자 제4대 쌍성총관이었던 조소생이 유인우를 비롯한 고려군에게 쫓겨나면서, 조휘가 몽골에 투항하여 시작된 그의 집안의 쌍성총관부 4대 99년 세습 지배가 종료되었다. 이로써 쌍성총관부는 고려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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