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협
정치인, 언론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3:23
-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동교동계 인물. - 황해도 실향민으로 전북 이리에 정착 언론인에서 4선 국회의원으로 우뚝 섰다. -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투옥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정치인. - 익산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장기 집권했다.
1941
[대한민국 언론인·정치인 탄생]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함께하며 언론인과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될 이협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됩니다.
1945
[8.15 광복 후 이리 정착]
해방 후 고향 황해도를 떠나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에 정착하여 성장합니다.
실향민의 아픔을 겪으며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그의 삶은 향후 정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80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투옥]
김대중 선생의 공보비서로 활동하던 중,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20개월간 옥고를 치릅니다.
그의 민주화를 향한 신념이 시험대에 오르지만, 이는 훗날 그를 '행동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만들게 됩니다.
1984
[민추협 초대 대변인 활동]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초대 대변인과 상임위원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섭니다.
그는 목소리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1988
[제13대 국회의원 당선]
전북 이리시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68.8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인생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그의 지역 기반과 김대중의 영향력이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1992
[제14대 국회의원 재선]
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전북 이리시에 출마하여 66.28%의 높은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지역 유권자들의 두터운 신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1996
[제15대 국회의원 3선]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익산시 을 선거구에 출마, 70.49%라는 경이로운 득표율로 3선에 성공합니다.
지역구 재조정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지지를 받으며 그의 영향력을 공고히 합니다.
2000
[제16대 국회의원 4선 달성]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익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려 75.6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 4선 의원이라는 금자탑을 쌓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역대급 득표율을 기록하며 지역구에서 그의 입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역사상 보기 드문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며 지역구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증명했습니다. 그의 높은 지지율은 단순히 당적을 넘어선 개인 역량과 지역에 대한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2001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취임]
4선 의원의 힘을 바탕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사무총장에 취임합니다.
당의 살림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으며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었음을 보여줍니다.
2002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퇴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직을 마무리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당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핵심 인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4
[노무현 탄핵 소추 참여]
정치적 격변기였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에 참여하며 그의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논란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제17대 총선 낙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조배숙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낙선하며 4선 의원의 막을 내립니다.
탄핵 역풍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