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
야구선수, 운동선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9:51
대전고 시절 대전고 김동주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5툴 플레이어. 두산 NC를 거쳐 KIA 타이거즈의 핵심 외야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201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타격왕에 오르며 대한민국 야구의 16년 만의 아시아 정상 복귀를 이끈 주역입니다. 2023년 데뷔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타자로서 만개했습니다.
1994
[야구 재능의 시작]
미래의 거포 이우성이 태어나 야구 선수로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대전고 입학과 동시에 주전 외야수, 4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11
[첫 태극마크]
대전고 재학 시절, 고교 야구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처음으로 대한민국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 선발되어 3개국 친선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2012
[세계 무대 첫 발]
청소년 대표팀으로 2년 연속 발탁되어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며 국제 경험을 쌓고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체구가 크고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로 '대전고 김동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2013
[두산 베어스 입단]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5순위, 2라운드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되며 프로 야구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계약금은 1억 2천만원이었습니다.
[상무 야구단 입대]
두산 입단 첫해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친 후, 국방의 의무를 위해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습니다.
2015
[아시아 제패 & 타격왕!]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주전 좌익수이자 중심 타자로 맹활약했습니다.
특히 일본전에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타율 0.692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타격왕에 등극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은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세계최초(혹은 해당 분야 최고)의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대회 내내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며 13타수 9안타를 기록,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대회 우승은 대한민국 야구가 다시 아시아 정점에 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6
[꿈에 그리던 1군 데뷔]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대타로 출전하며 마침내 KBO 리그 1군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비록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프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습니다.
2018
[NC 다이노스 이적]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던 윤수호 선수와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기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습니다.
2019
[KIA 타이거즈 이적]
이번에는 KIA 타이거즈의 이명기 선수와 1:1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다시 한번 팀을 옮겼습니다.
이후 KIA의 핵심 외야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2022
2023
[커리어 하이 시즌]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타율 0.301, 19홈런, 58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19개의 홈런은 이전까지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로, 타자로서 만개했음을 증명했습니다.
126경기 출장하며 KIA 타이거즈의 중심 타자로서 맹활약, 팀 성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24
[새로운 가족의 탄생]
예쁜 딸을 얻으며 아빠가 되었습니다.
가족의 탄생은 선수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