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1980년)
야구 선수, 야구 코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9:40
- 전 KBO 리그 외야수이자 현 야구 코치. - 국내 프로야구에서 20시즌 동안 활약하며 통산 2 125안타를 기록한 꾸준함의 대명사. - 2006년 WBC에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빼어난 수비 실력을 인정받음.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주역으로 국가대표로서 결정적인 활약을 펼침. -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KBO 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 선수 양성에 기여 중.
1980
전 KBO 리그 kt 위즈의 외야수이자 내야수였으며, 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QC코치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인 이진영이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1997
[세계 청소년 선수권 도루왕 등극]
군산상고 재학 중 제17회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도루왕을 차지하며 잠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시절 제 17회 세계 청소년 선수권 도루왕을 차지하며 탁월한 주루 능력을 선보였다.
1998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베스트 9 선정]
제 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베스트 9에 선정되며 아시아 무대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제 3회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베스트 9으로 선정되며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99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와 SK 이적]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되면서, 선수단이 SK 그룹에 인계되어 SK 와이번스 소속이 되었습니다.
1999년 시즌 후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되었고, 선수단이 SK 그룹에 인계돼 2000년부터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활동하게 됐다.
[프로 입단과 포지션 전향]
1차 지명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외야수로 전향, 팀의 마지막 신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1999년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원에 투수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으나 외야수로 전향했다. 그는 팀이 경영난으로 인해 지명한 선수들 중 대학 진학자를 제외하고 고졸 선수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계약한 신인 선수였다.
KBO 리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으로 전주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 첫 출장했다.
2003
[개인 수상 및 아시아 선수권 동메달]
올스타전 출전과 함께 플레이오프 MVP, 골든 포토상을 수상하며 개인 기량을 인정받았고,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3년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플레이오프 MVP와 골든 포토상을 수상하며 시즌 활약을 인정받았다. 또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4
2004년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을 수상하며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인정받았다.
2005
2005년 7월 KBO 리그 월간 MVP(타자 부문)로 선정되며 뛰어난 타격 능력을 선보였다.
2006
['국민 우익수' 등극과 WBC 동메달]
제1회 WBC 일본전에서 뛰어난 수비와 정확한 송구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6년 제1회 WBC 1라운드 일본전에서 다이빙 캐치를, 2라운드에서 정확한 송구로 홈 쇄도를 저지하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7
[SK 와이번스 통합 우승 주역]
소속팀 SK 와이번스의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2007년 소속팀 SK 와이번스가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며 팀의 황금기를 함께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영웅]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 일본전에서 동점 적시타를 터뜨려 금메달 획득의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 일본전에서 1점 차로 뒤지던 후반 대타로 투입되어 당시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쳐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LG 트윈스로의 FA 이적]
FA 자격을 얻어 LG 트윈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며 새로운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08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LG 트윈스와 연봉 3억 6,000만원의 조건으로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2009
2009년 제2회 WBC 2라운드 일본전에서 선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쳐 결승타를 기록했다. 대만과의 경기에서는 만루 홈런을 쳐내는 등 맹활약하며 한국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14
[LG 트윈스 주장 역임과 꾸준한 활약]
LG 트윈스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팀을 이끌었고, 3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보였습니다.
2014년 시즌부터 LG 트윈스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었으며, 3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에서도 꾸준함을 과시했다.
2016
2016년 2차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을 받아 kt 위즈로 이적하며 선수 생활의 후반기를 보냈다. 이후 FA를 선언하고 2년 15억 원에 kt 위즈에 잔류했다.
2018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가 그의 KBO 리그 현역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0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kt를 떠나면서까지 더 뛰고 싶지 않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19
[지도자 연수 및 국가대표 코치 데뷔]
일본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코치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프로 야구 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20
[친정팀 코치 복귀]
12년 만에 친정팀인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타격코치로 복귀하며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걸었습니다.
2020년부터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12년만에 지도자로서 친정팀에 복귀했다.
2023
2023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QC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024
2024년부터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하여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