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태인

야구 선수, 야구 코치, 기업인

num_of_likes 63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9:08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야구 선수, 야구 코치, 기업인
report
Edit

좌완 투수 유망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며 기대를 모았던 채태인. 하지만 부상으로 귀국 후 타자로 전향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주축 타자로 활약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뇌진탕 후유증과 끝없는 부진을 딛고 교타자로 완벽히 부활하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며 채천사라는 별명도 얻었죠. 은퇴 후에는 야구 인스트럭터이자 기업인으로 변신 제2의 인생을 힘차게 살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82

[한 야구인의 탄생]

부산에서 태어난 채태인 선수는 훗날 KBO 리그와 미국 마이너리그를 넘나들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을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부산직할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재능을 키우며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습니다.

2001

[아마추어 스타의 활약]

부산상고 시절, 화랑대기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며 타점상을 수상했습니다.

뛰어난 장타력과 정교함을 인정받았던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타자'로 전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고교 시절 뛰어난 좌완 투수이자 타자로서 재능을 보이며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화랑대기 대회 우승과 타점상 수상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 계약!]

두산 베어스의 신인 지명을 거절하고, 당시 한국 선수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80만 달러(약 10억 원)에 메이저리그 명문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좌완 투수로서 그의 잠재력이 얼마나 높게 평가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뛰어난 좌완 투수로서 해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아 2001년 신인 지명에서 두산 베어스의 2차 10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을 거절하고 계약금 80만 달러의 조건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습니다.

[부상, 커리어의 전환점]

메이저리그의 꿈을 키우던 중 어깨 수술을 받게 되었고,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투수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립니다.

이 부상은 결국 그의 커리어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2001년 6월 어깨 수술을 받은 후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 투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2

[병역 의무 이행 시작]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채태인은 곧바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시작하며 병역 의무를 이행합니다.

이 시간은 그에게 미래를 설계할 중요한 시기가 됩니다.

보스턴에서 임의 탈퇴 공시된 후 2002년 말에 귀국하자마자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생활의 종지부]

부상 회복이 더뎌지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임의 탈퇴 공시되며 미국에서의 야구 생활을 아쉽게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습니다.

어깨 부상 여파로 인해 2002년 9월 임의 탈퇴 공시되었습니다.

2005

[병역 의무 완료]

오랜 기다림 끝에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됩니다.

이제 다시 야구 선수로서의 길을 모색할 자유를 얻게 됩니다.

2005년 2월 25일에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되었습니다.

[보스턴과 계약 해지]

원 소속팀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계약을 완전히 해지하며, 비로소 KBO 리그로의 복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야구 인생을 위한 준비가 끝났습니다.

소집 해제된 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극동 담당 스카우트인 존 디블과 면담한 후 2005년 9월에 상호 간 계약을 완전히 해지했습니다.

2007

[삼성 라이온즈 입단]

해외파 특별 지명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며 국내 무대에 발을 들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입단과 동시에 투수였던 그가 1루수로 전향하며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김응용 당시 사장이 그의 타격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해외파 특별 지명에 참가해 유예 기간을 해제, 2007년 4월 5일 계약금 1억, 연봉 5,000만원의 조건으로 입단했습니다. 입단과 동시에 당시 타격코치였던 이종두를 통해 1루수로 전향했습니다.

[KBO 퓨처스 초대 MVP 등극!]

1루수 전향 후 불과 몇 달 만에 KBO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초대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잠재력을 입증한 기념비적인 순간이자 KBO 역사에 기록될 장면이었습니다.

2007년 7월 18일 KBO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초대 MVP를 수상하며 새로운 포지션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2008

[삼성의 핵심 타자로 성장]

외국인 타자 제이컵 크루즈가 방출된 후, 채태인 선수는 타선에서 기회를 잡기 시작하며 타자로서의 재능을 만개시킵니다.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하며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제이컵 크루즈가 방출된 후 타선에서 기회를 잡아 2008년 시즌 중반부터 타자로서 두각을 드러내 팀의 중심 타자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도박 사건 연루]

시즌을 마친 후 불미스러운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야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다음 시즌 개막 전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게 됩니다.

2008년 말 도박 사건에 연루돼 2009년 시즌 개막 전에 5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2009

[복귀전 첫 타석 홈런포!]

징계를 마치고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복귀한 그는, 첫 타석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인 장외 홈런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화려한 복귀를 알리는 시원한 한 방이었습니다!.

2009년 4월 10일 KIA전에 복귀해 첫 타석에서 장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10

[뇌진탕 부상 발생]

1루 수비 중 파울 플라이 타구를 잡다가 땅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뇌진탕 증세를 겪게 됩니다.

여기에 허리 통증까지 겹치며 그의 커리어에 또 한 번의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2010년 8월에 1루수 수비 중 파울 플라이 타구를 잡다가 땅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뇌진탕 증세가 왔고, 허리 통증까지 겹쳤습니다.

2011

[끝없는 부진의 터널]

뇌진탕 후유증으로 인해 2011년에는 5홈런, 2012년에는 단 1홈런에 그치는 등 극심한 부진에 빠집니다.

대타로만 출전하며 그의 재능이 빛을 잃는 듯 보였습니다.

2011년부터 뇌진탕 후유증으로 인한 극심한 부진에 빠졌습니다. 2011년에는 5홈런을 쳐 냈고, 2012년에는 1홈런 밖에 못 치고 타점도 많이 기록하지 못해 늘 대타로만 출전하는 등 2012년 후반까지 부진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2013

[교타자로 대부활!]

타격 폼을 바꾸는 등 처절한 노력 끝에 1군에 복귀, 그간의 슬럼프를 깨고 '교타자'로 완벽히 변모하며 드라마틱한 부활에 성공합니다! 비록 어깨 부상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다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2013년 타격 폼을 바꾸는 등 온갖 노력 끝에 1군에 복귀해 그간의 슬럼프를 깨며 교타자가 됐습니다. 어깨에 실금이 가는 부상이 드러나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해 장외 타격왕에 그쳤지만 11홈런, 53타점, 52득점을 기록해 두 자릿수 홈런에 복귀했으며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박한이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14

[커리어 최전성기]

3번 타자로 활약하며 3할 타율, 14홈런, 99타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하며 팀의 주축 타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그의 타격은 절정기에 달했습니다.

2014년 시즌에도 3번 타자로 활약했으며, 3할 타율, 14홈런, 99타점으로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15

[부상 복귀]

옆구리 부상으로 시즌 초반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5월 12일 성공적으로 복귀하여 여전한 타격감을 선보이며 팀에 힘을 보탰습니다.

2015년 시즌에는 옆구리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다가 5월 12일에 복귀했습니다.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

메이저리그로 떠난 박병호 선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투수 김대우 선수와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했습니다.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015년 12월 2일,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한 박병호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2016년 3월 22일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투수 김대우와의 1:1 트레이드로 이적했습니다.

2016

[넥센 주축 선수 입증]

넥센 이적 후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며 시즌 후 3억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 팀의 핵심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꾸준함의 대명사다운 모습이었습니다.

2016년 시즌 후 3억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18

[고향 팀 롯데로 이적!]

넥센 히어로즈와 1+1년 총액 10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한 후, 투수 박성민 선수와의 사인 앤 트레이드를 통해 마침내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습니다! 부산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꿈에 그리던 고향 팀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2018년 1월 12일, 넥센 히어로즈와 1+1년 총액 10억원에 FA 계약 후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투수 박성민과의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했습니다.

2020

[SK 와이번스 합류]

KBO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며 새로운 팀에서 마지막 프로 무대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프로 생활 마지막 팀이 됩니다.

2020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습니다.

[프로 선수 생활 마무리]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며 14년간의 드라마틱했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에 아쉽게도 마침표를 찍습니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0년 11월 6일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며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2021

[인스트럭터 겸 이사 활동]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모교인 개성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와 가평 웨일스(당시 시흥 울브스) 홍보팀 이사로 활동하며 야구계에 여전히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새로운 인생 2막이 시작된 해입니다.

2021년부터 개성고등학교 야구부의 인스트럭터, 시흥 울브스 홍보팀의 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시흥 울브스는 2022년부터 가평 웨일스로 변경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

[채태인 타격 연구소 설립]

본인의 이름을 건 '채태인 타격 연구소' 대표로 활동을 시작하며, 후배 양성과 한국 야구 발전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의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은퇴 후에도 식지 않고 계속됩니다.

2023년부터 채태인타격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개성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와 가평 웨일스 홍보팀 이사 직도 겸하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