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
야구 선수, 야구 감독, 야구 코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6:48
대한민국의 전 KBO 리그 포수이자 현 수원 파인이그스 감독. KBO 리그 원년 멤버로 OB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다. 은퇴 후 SK KIA kt 감독을 역임했으며 특히 2009년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을 이끌며 조갈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평생의 라이벌 김경문과의 인연 스승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 등 흥미로운 야구 인생을 거쳐왔다.
1959
1977
[충암고 봉황대기 우승]
선수 생활 초반 대건고 야구부 해체로 방황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전학한 충암고에서 1977년 제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다.
이는 그의 야구 인생에서 전화위복의 순간이자, 타고난 재능을 보여준 첫 증명이었다.
1982
[KBO 리그 원년 멤버]
인하대 재학 중이던 1982년,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의 역사적인 출범과 함께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단했다.
김경문과 함께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로 팀의 안방을 책임지며 KBO 리그의 시작을 함께했다.
[KBO 리그 첫 출장]
OB 베어스 소속으로 1982년 3월 28일 동대문 야구장에서 MBC 청룡과의 경기에 출장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 경기를 치렀다.
1990
[삼성 라이온즈 이적]
1990년 시즌 종료 후, 투수 윤석환과 함께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며 선수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KBO 최악의 집단 난투극]
OB 베어스 소속이던 1990년 6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투수 김진규의 빈볼 시비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집단 난투극에 가담했다.
22분간 이어진 싸움 끝에 퇴장당했으며, 벌금 3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흥미롭게도 이 시즌 후, 그 난투극의 상대였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다.
1992
[현역 선수 은퇴]
1992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며 11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지도자 생활 시작]
선수 은퇴 직후인 1992년,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의 2군 코치로 부임하며 제2의 야구 인생인 지도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3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
1993년부터 쌍방울 레이더스의 배터리코치로 자리를 옮겨 스승 김성근 감독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코칭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
[삼성 라이온즈 코치 복귀]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된 후,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배터리코치로 복귀하여 다시 한번 친정팀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다.
2002
[삼성 한국시리즈 우승 기여]
2002년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코치로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 우승은 그가 감독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2003
[SK 와이번스 감독 부임]
2003년, 만년 하위팀이던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전격 부임하며 그의 감독 시대가 열렸다.
부임 첫 해 팀을 정규 시즌 4위,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이끌며 '리빌딩의 마법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팀을 단숨에 강팀으로 변모시킨 그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다.
2006
[WBC 국가대표 코치]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팀의 배터리코치를 맡아 국제 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선전을 도왔다.
이는 그의 지도력이 국가대표팀에서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SK 와이번스 감독 사임]
2006년 정규 시즌을 6위로 마감한 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사임하며, 그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이는 SK 왕조의 시작점이 되었다.
2007
[KIA 타이거즈 코치 부임]
2007년 6월, 서정환 당시 KIA 타이거즈 감독의 부름을 받아 배터리코치로 임명되며 KIA와의 새로운 인연을 시작했다.
이 만남은 훗날 KIA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KIA 타이거즈 감독 취임]
2007년 시즌 KIA 타이거즈의 성적 부진으로 서정환 감독이 물러나자, 그의 뒤를 이어 KIA 타이거즈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며 다시 한번 사령탑에 올랐다.
2009
[KIA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
2009년, 김상현 트레이드와 외국인 투수진의 활약, 최희섭-김상현의 뛰어난 타격에 힘입어 '조갈량'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KIA 타이거즈를 정규 리그 1위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스승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를 꺾고 팀의 10번째 우승이자, 그의 감독 커리어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이는 KIA 타이거즈의 오랜 숙원을 풀어준 역사적인 우승이었다.
2010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으로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팀을 이끌어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며,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리더십을 증명했다.
2011
[KIA 타이거즈 감독 사임]
2011년 전반기 1위를 달리던 KIA 타이거즈는 후반기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4위로 시즌을 마쳤고,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 패배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에 10월 18일, 일부 극성 팬들의 거센 사퇴 압박에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이후 KBO 육성 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야구 발전에 힘썼다.
2012
[삼성 포수 인스트럭터]
2012년 11월,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훈련 때 포수 인스트럭터로 합류하여 한 달간 젊은 포수들의 기량 향상을 도왔다.
이는 그의 풍부한 포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기회가 되었다.
2013
[kt 위즈 초대 감독 선임]
2013년 8월 2일, 당시 KBO 리그 신생팀이었던 kt 위즈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 3년, 총액 15억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는 신생팀의 역사를 처음부터 써 내려가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2016
[kt 위즈 감독 재계약 실패]
kt 위즈 감독 재임 기간 중 일부 선수들의 사생활 논란과 음주운전, 음란 행위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기대했던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2016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신생팀을 이끄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2023
[수원 파인이그스 감독 부임]
2023년부터 수원 파인이그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다시 한번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지도력이 새로운 팀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