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1959년)

야구 선수, 감독,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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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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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감독,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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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초대 신인왕이자 OB 베어스 간판 외야수. 선수 은퇴 후 다수 구단 코치 LG 트윈스 감독 역임. 화수분 야구로 유망주 육성 능력을 인정받은 명 지도자. NC 육성이사 및 고양본부장 한화 이글스 단장까지 프런트 경험 보유. 한국 야구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레전드 선수이자 프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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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박종훈 출생]

전 OB 베어스의 외야수이자 KBO 리그 초대 신인왕인 박종훈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야구선수 박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1959년 6월 12일,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69

[야구 시작]

강원 홍천 석화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하며 야구인생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군 하사관인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전국 곳곳을 옮겨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강원 홍천 석화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1982

[상업은행 야구단 활동]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실업 야구 팀인 상업은행 야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서울 신일중학교와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2년 한 해 동안 실업 야구 팀인 상업은행 야구단에서 선수로 뛰었습니다.

1983

[OB 베어스 입단 및 KBO 첫 출장]

1983년 신인 드래프트 1차 2순위로 OB 베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같은 해 KBO 리그에 첫 출장했습니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OB 베어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KBO 리그 첫 출장도 같은 해에 이루어졌습니다.

[KBO 초대 신인왕 및 다관왕]

데뷔 시즌인 1983년, 97경기에 출장해 3할대 타율과 117안타를 기록하며 최다 안타상, KBO 초대 신인왕, 그리고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1983년 시즌 97경기에 출장하여 0.312의 타율과 117안타를 기록, 최다 안타상과 KBO 리그 초대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거머쥐며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1985

[두 번째 골든 글러브 수상]

1985년에도 3할대 타율과 119안타를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보였고, 두 번째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1985년 시즌에도 0.342의 타율과 119안타를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보였고, 그 결과 두 번째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 발생]

MBC와의 경기에서 오영일 선수의 공에 허리를 맞아 고질적인 부상을 입었으며, 이 부상으로 인해 이후 선수 생활에 큰 지장을 받았습니다.

1985년 7월 17일, MBC 청룡과의 경기 중 오영일 선수가 던진 공에 허리를 맞게 되었고, 이 부상은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이어져 1986년 이후 활약이 미미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989

[OB 베어스 선수 은퇴]

고질적인 허리 부상 등의 여파로 1989년 시즌을 끝으로 OB 베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1985년 발생한 고질적인 허리 부상의 여파로 1986년 이후 활약이 저조했으며, 1989년 KBO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OB 베어스에서의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고 은퇴했습니다.

1990

[미국 지도자 연수]

선수 은퇴 이듬해인 199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1989년 선수 은퇴 후 이듬해인 199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야구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전문 연수를 받았습니다.

1993

[보스턴 레드삭스 코치 활동]

미국 지도자 연수 기간 중인 1993년, 메이저리그 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코치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미국 지도자 연수 기간 중인 1993년에 메이저리그 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선진 야구를 경험하고 지도자로서의 시야를 넓혔습니다.

1994

[LG 트윈스 타격코치 부임 및 우승]

1994년 LG 트윈스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그의 지도 첫 해 LG 트윈스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LG 트윈스의 타격 코치를 역임했으며, 그가 타격 코치로 부임한 첫 해인 1994년에 LG 트윈스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97

[현대 유니콘스 타격코치 부임]

1996년 LG 트윈스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 1997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겨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1996년 당시 이광환 감독이 물러났을 때 LG 트윈스와 재계약에 실패했고, 이후 1997년부터 2002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새로운 팀에서 지도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03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겸 2군 감독]

2003년부터 2006년까지 SK 와이번스에서 수석코치와 2군 감독을 겸임하며 팀의 선수 육성과 운영에 기여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코치 경력을 마친 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SK 와이번스의 수석 코치와 2군 감독을 동시에 역임하며 선수 육성과 팀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2007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부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친정팀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을 맡아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며 '화수분 야구'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SK 와이번스 경력을 마친 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을 맡아 많은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며 두산식 "화수분 야구"를 이끌었고, 이는 LG 트윈스 감독 선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

[LG 트윈스 감독 선임]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을 역임하던 중 2009년 9월 27일, LG 트윈스의 제9대 감독으로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던 팀에 복귀했습니다.

2009년 시즌 직후 LG 트윈스의 성적 부진으로 김재박 감독이 물러나자, '화수분 야구'로 유망주 발전에 기여했던 그가 2009년 9월 27일 LG 트윈스의 제9대 감독으로 발표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던 팀으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장기적인 유망주 육성과 리빌딩을 위해 5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2010

[LG 트윈스 감독으로서 팀 쇄신 시작]

감독 부임 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활동하던 이병규(1974년생)를 복귀시키고, 견제 세력 강화와 정신 자세를 강조하며 철저한 주전 경쟁을 시사했습니다.

LG 트윈스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활동하던 이병규(1974년생)를 팀에 복귀시켜 외야진을 강화했으며, 견제 세력 강화와 정신 자세를 강조하며 선수들에게 철저한 주전 경쟁을 시사하는 등 팀 쇄신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선수단 기강 확립을 위한 강경책]

시즌 중 해이해진 정신 상태를 보인 류택현과 항명한 봉중근을 곧바로 2군으로 보내는 등 선수단 기강 확립을 위해 강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0년 시즌 중, 그가 요구하는 시선에 해이해진 정신 상태를 보인 류택현 선수를 곧바로 2군으로 보냈으며, 항명했던 봉중근 선수 역시 강판 후 즉시 2군으로 내보내는 등 선수단 기강 확립과 팀 쇄신을 위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SK-LG 4:3 대형 트레이드]

투수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K 와이번스와 4:3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김선규, 박현준, 윤요섭을 영입하고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최동수를 보냈습니다.

2010년 7월 28일, 팀 내 투수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전력 강화를 위해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4:3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투수 김선규, 박현준, 포수 윤요섭을 영입하고,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최동수를 SK로 보냈으며, 영입된 선수들은 2011년 LG 트윈스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2011

[LG 트윈스 감독 사임]

2011년 10월 6일, 포스트 시즌 탈락 확정 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즌 최종전 직전에 LG 트윈스 감독직에서 사임을 선언했습니다.

2011년 10월 6일, 팀의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되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즌 최종전 직전에 LG 트윈스 감독직에서 사임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당시 수석코치였던 김기태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제주특별자치도로 내려가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2013

[NC 다이노스 육성이사 부임]

LG 트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인 2013년에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육성이사로 영입되어 선수 스카우트와 육성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2012년 시즌 후, 신생 팀인 NC 다이노스의 2군 감독으로 갈 것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육성 이사를 맡아 선수 스카우트 및 육성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두산 베어스 시절 한 팀이었던 김경문 감독과 다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2016

[NC 다이노스 고양본부장]

2016년 NC 다이노스의 고양본부장을 맡으며 프런트 업무를 지속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NC 다이노스의 육성이사를 역임한 후, 2016년에는 NC 다이노스 고양본부장으로 보직을 변경하여 활동했습니다.

[한화 이글스 단장 선임]

2016년 11월 3일, 한화 이글스의 단장으로 선임되며 프런트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16년 11월 3일, NC 다이노스 고양본부장을 맡던 중 한화 이글스의 단장으로 선임되며 구단 운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2019

[한화 이글스 단장 활동 종료]

2017년부터 시작된 한화 이글스 단장직을 2019년까지 역임하며 한화 이글스의 구단 운영을 이끌었습니다.

2016년 11월 3일 한화 이글스 단장으로 선임되어 2017년부터 활동했으며, 2019년까지 단장직을 수행한 후 해당 경력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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