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안
야구 선수, 야구 코치, 야구 감독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6:43
KBO 리그의 원년 멤버이자 공격형 포수로 이름을 날린 유승안은 선수 시절 골든 글러브와 타점왕을 동시 석권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은퇴 후 한화 이글스의 코치 감독을 거쳐 경찰 야구단 감독으로서 창단 첫 우승을 이끄는 등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한국 야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야구인 가족의 중심에 있는 인물.
1956
1982
[KBO 원년 멤버 데뷔]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 출범과 함께 MBC 청룡의 원년 멤버로 프로 무대에 발을 디딘 공격형 포수이다.
[개막전 대형 사고]
KBO 원년 개막전, 동점 3점 홈런으로 팀을 구하나 싶었지만, 백인천 감독의 지시를 무시한 끝내기 병살타로 눈 밖에 나는 파란만장한 데뷔전을 치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 연장 승부에서 3루 주자를 횡사시키는 어이없는 아웃으로 인해 유승안은 백인천 감독의 혹독한 신임을 얻게 된다. 이는 그의 선수 커리어 초기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4
[해태로의 이적]
MBC 청룡에서 주전 포수로 자리 잡지 못하자, 1,5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이적료로 해태 타이거즈로 팀을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986
[빙그레 이글스 합류]
해태의 포수진에 밀려 노장이 된 유승안은 당시 신생팀이었던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며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1987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노장이 된 몸으로 지명타자로 맹활약하며, 뛰어난 타격 실력을 인정받아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1989
[타점왕 & 포수 GG 동시 석권]
4번 타자의 중책을 맡아 KBO 리그 전체 타점 1위(85타점)에 오르며 타점왕을 차지했고, 동시에 포수로서도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공수 겸장 포수의 위용을 뽐냈다.
1991
[10년 선수 생활 은퇴]
1991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10년간 KBO 리그에서 활약했던 그의 야구 인생 1막을 내렸다.
1994
[한화 이글스 코치 시작]
현역 은퇴 후 곧바로 친정팀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 이후 배터리 코치를 거쳐 수석 코치까지 역임했다.
1999
[코치로 한국시리즈 우승]
수석 코치로 재임하며 한화 이글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이끌었다.
이는 그의 지도자 경력에 빛나는 금자탑이 되었다.
[부인 사별 및 미국 연수]
부인 이금복 씨와 사별한 아픔을 딛고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재도약의 기회를 모색했다.
2002
[한화 이글스 감독 취임]
오랜 코치 생활을 거쳐 친정팀 한화 이글스의 제6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의욕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하며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 했다.
2004
[한화 감독직 사임]
2년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재임했으나,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지 못하고 계약 만료로 물러나 아쉬움을 남겼다.
2008
[경찰 야구단 감독 취임]
KBO 운영위원을 거쳐, 군 복무 중인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돕는 경찰 야구단의 3대 감독으로 취임하며 또 다른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11
[경찰 야구단 창단 첫 우승]
경찰 야구단 감독으로서 2011년, 팀을 이끌고 창단 이래 처음으로 퓨처스 북부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지도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12
[차남과 한 팀에서 조우]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경찰 야구단에 차남 유민상 선수가 입단하며 부자가 같은 팀에서 지도자와 선수로 함께 활동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2019
[경찰 야구단 감독 퇴임]
오랜 기간 경찰 야구단의 감독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유망주를 길러냈던 그가 팀 해체와 함께 감독직에서 물러나, 지도자 커리어의 한 시대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