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용득

야구인, 감독, 선수, 해설가,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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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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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득은 1970년대 국가대표 포수로 활약하며 국제 대회 금메달을 이끈 한국 야구의 레전드입니다. KBO 리그 출범 후 삼성과 롯데의 감독을 역임하며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이승엽 이대호 등 당대 최고 타자들을 발굴한 선구안을 지닌 한국 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야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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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야구인 우용득 탄생]

대구에서 태어난 우용득은 훗날 KBO 리그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그의 야구 인생은 1970년대 국가대표 포수로 시작해 KBO 리그 감독까지 이어지며 한국 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1970

[국가대표 포수 활약]

우용득은 1970년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특히 1971년과 197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하며 대한민국 야구사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한일은행 야구단에서 실업 선수로 뛰었으며, 1971년 서울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단체전 금메달과 1975년 서울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1

[현역 선수 은퇴]

1970년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 포수 우용득은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친정팀 한일은행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합니다.

이는 훗날 그가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감독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982

[삼성 라이온즈 코치 부임]

대한민국 프로야구 KBO 리그의 역사가 시작된 1982년, 우용득은 연고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합류하며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딛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코치직을 맡았지만, 1983년까지는 필요에 따라 선수로도 출전하며 팀에 기여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1988

[MBC 청룡 타격코치]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 경력을 쌓아가던 우용득은 1988년 4월 1일, MBC 청룡의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2년 계약으로 타격 이론과 실전 경험을 접목하며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힘썼습니다.

1992

[삼성 라이온즈 감독 취임]

1992시즌을 마치고 김성근 감독이 물러나자, 우용득은 마침내 삼성 라이온즈의 지휘봉을 잡게 됩니다.

감독으로서 첫 임무는 파격적인 세대교체였습니다.

노장 선수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어 팀 체질 개선을 시도하며 새로운 삼성의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1993

[한국시리즈 첫 도전]

우용득 감독은 취임 첫해인 1993년, 팀을 정규 시즌 2위로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했습니다.

숙명의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초반 2승 1패로 앞서나가며 우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과 주전 포수 박선일의 부상 악재가 겹치며 아쉽게 3승 4패로 패배, 우승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 승리 후 2승 1패로 앞섰으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주전 포수 박선일이 슬라이딩 도중 손 부상을 당하며 남은 시즌을 마감한 것이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 4차전 승리 후 3연패를 당했다.

1995

[삼성 감독직 해임]

세대교체와 함께 우승을 노렸던 우용득 감독은 1994년과 1995년, 팀 내 간판 선수들의 부상과 개인주의 만연으로 인한 팀 분위기 저하라는 악재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2년 연속 5위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3년 계약 만료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1994년과 1995년 내리 5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3년 계약 만료 후 백인천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2001

[롯데 감독 대행 부임]

삼성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으로 활동하던 우용득은 2001년 7월 24일, 김명성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감독 대행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팀을 수습하고 남은 시즌을 이끌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2002

[롯데 감독 해임]

2002년 시즌을 앞두고 7년 만에 정식 감독으로 복귀한 우용득은 롯데를 이끌었지만,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와 주포 호세의 계약 파문 등 악재가 겹치며 팀은 최하위를 면치 못했습니다.

특히 충격적인 16연패를 기록하며 결국 그 해 6월, 또 다시 백인천 감독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해임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훗날 이승엽, 이대호 등 전설적인 타자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시킨 선구안으로 재평가 받습니다.

투자 소극적인 구단과 타선을 이끌었던 펠릭스 호세의 2중 계약 파문 등 어수선한 팀 분위기 때문에 최하위를 전전했다. 본래 투수였던 이승엽, 이대호를 타자로 전향시켜 훗날 팀 타선의 핵심으로 발돋움하게 한 공헌이 있다.

2009

[삼성 스카우트 복귀]

롯데 감독직 해임 후 야구 칼럼니스트 및 해설가로 활동하던 우용득은 2009년,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팀에 합류하며 현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이는 그의 오랜 야구 경험과 선수 발굴 능력이 다시금 빛을 발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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