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야구인, 선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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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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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4할 타자 백인천! 한국 최초의 4할 타율 기록과 일본 프로야구 타격왕까지 거머쥔 전설적인 선수이자 LG 트윈스를 우승시킨 명장입니다. 그의 강렬한 야구 인생 속으로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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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백인천 탄생]

중화민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며 한국 야구의 전설로 발돋움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945

[광복 후 한국 귀국]

8.15 광복 후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서울에서 성장하며 야구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1959

[첫 타격상 수상]

어린 시절부터 타격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며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 미래의 '타격의 신' 등장을 예고했습니다.

1961

[빙판 위 금메달]

야구선수로서 드물게 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뽐냈습니다.

[국가대표 첫 홈런]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필리핀전에서 대회 유일한 홈런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962

[최우수선수와 일본행]

대한체육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국내 최고의 선수임을 인정받고, 일본 프로야구(NPB)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1975

[일본 타격왕 등극]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수위 타자를 차지하며 타격의 정교함과 파워를 겸비한 선수로 인정받았고, 베스트나인 외야수로도 선정되었습니다.

1981

[일본 리그 마지막]

긴테쓰 버펄로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야구 마지막 경기를 치르며, 오랜 기간 활약했던 NPB 커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1982

[한국 야구 첫 4할]

40세의 나이로 KBO 리그 원년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며,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4할 1푼 2리'라는 경이로운 타율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전설로 남았습니다.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에 첫 출장했습니다. 그는 단 80경기만에 KBO 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4할 타율(0.412)을 달성하며 '마지막 4할 타자'이자 '최고 타율 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새겼습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1983

[간통죄 구속 논란]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 후 사생활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며 간통죄로 구속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한 후 다른 여성과의 불륜 관계를 걸어 아내가 고소하면서 간통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얼마 뒤 이혼하고 고소는 취하되어 선수로 복귀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선수로서의 감각 저하를 겪었다고 합니다.

1984

[선수 생활 마감]

구덕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나며 23년간의 화려했던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1990

[LG 트윈스 우승]

LG 트윈스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1990년 1월 18일, LG 트윈스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그 해 팀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는 백인천 감독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LG 트윈스 구단의 역사적인 첫 우승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95

[삼성 감독 부임]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하여 훗날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될 이승엽을 발굴하는 등 팀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2

[롯데 감독 시절 논란]

롯데 자이언츠 감독 재임 시절, 이대호 선수에게 무리한 다이어트를 지시하거나 에이스 투수 손민한의 포수 전업을 시도하는 등 논란을 빚었습니다.

2002년 6월 21일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재임하던 시기, 유망주 이대호에게 과도한 다이어트를 지시하며 무릎 부상을 입게 하거나, 에이스 투수 손민한을 포수로 전업시키려 시도하는 등 구단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논란과 잡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강기웅 선수와의 불화로 인해 트레이드하는 등 선수들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2010

[은퇴선수협 회장]

KBO 리그 은퇴선수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한 봉사에 앞장서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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