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철
야구 선수, 야구 감독, 해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5:45
한국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야전사령관이자 호타준족 외야수. KBO 역사상 타이거즈 소속으로는 이례적인 신인왕(1985년)을 차지하며 강렬하게 데뷔. 현역 시절 당시 KBO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갱신하는 등 리그를 호령한 독보적인 주루 능력의 소유자. 은퇴 후 감독과 코치를 거쳐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별명처럼 거침없고 직설적인 해설로 야구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현직 해설가.
1961
1984
1985
[타이거즈 유일 신인왕]
해태 타이거즈에 1차 5순위로 프로 입단하여 데뷔 첫 해 신인왕과 함께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해태-KIA 타이거즈 역사상 유일한 신인왕 기록입니다.
데뷔 첫 해 31도루를 기록하며 도루 부문 4위에 올랐고, 득점왕도 차지하며 맹활약했습니다. 그의 신인왕 수상은 해태-KIA 타이거즈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독보적인 기록입니다.
1986
[해태 타이거즈 왕조 기여]
이 해부터 해태 타이거즈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1997년까지 팀의 한국시리즈 8회 우승(1986, 1987, 1988, 1989, 1991, 1993, 1996, 1997년)에 기여하며 타이거즈 왕조 시대를 함께했습니다.
1988
[도루왕 등극]
생애 첫 도루왕(58도루)과 함께 득점왕을 차지하고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1991
1992
[20-20 클럽 가입]
최다 안타상과 세 번째 도루왕(44도루)을 수상하고, KBO 리그 최초로 20-20 클럽(20홈런-20도루)에 가입하며 호타준족의 대명사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해 외야수 골든글러브도 받았습니다.
1993
1994
[KBO 역대 2번째 300도루]
광주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역대 KBO 리그 2번째로 300도루를 달성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KBO 역대 8번째 1000안타]
광주에서 열린 쌍방울 레이더스전에서 역대 KBO 리그 8번째로 1000안타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96
1997
[KBO 통산 최다 도루 갱신]
이 해 364도루를 성공시키며 당시 김일권 선수가 보유하고 있던 KBO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친정팀 해태 타이거즈에서 방출되었습니다.
김일권 선수의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뛰어넘으며 전설적인 주루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98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역대 8번째 600타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9
2001
2003
2006
[LG 트윈스 감독 사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LG 트윈스 감독직에서 사임하고, 잠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2007
2008
[우리 히어로즈 코치]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수석 및 주루코치로 임명되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재계약에 실패했습니다.
2009
[WBC 코치 및 해설 복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여했으며, 이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복귀하여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별명과 함께 직설적인 해설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후배 선수나 감독의 잘못을 비판하는 거침없는 해설로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야구팬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2011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
선동열 감독 부임과 함께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내정되며 3년여 만에 현장 지도자로 복귀했습니다.
2013
[SBS 스포츠 해설위원 이적]
SBS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간간히 소집되었습니다.
2014
[아들에게도 독설]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별명답게 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한 자신의 아들 이성곤 선수에게도 거침없는 독설을 날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5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