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쇼트트랙 선수, 올림픽 메달리스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5:00
한국 빙상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황제.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로 전향 후 올림픽 금메달 2개 포함 총 6개 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동계 올림픽 역대 최다 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아시아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중 최다 올림픽 메달 기록을 보유하며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1988
[빙상 황제의 탄생]
대한민국 서울에서 훗날 한국 동계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쓸 위대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승훈이 태어났다.
2005
[쇼트트랙 유망주의 등장]
쇼트트랙 선수 활동을 시작하며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계주 은메달과 3000m, 1500m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세계 팀 선수권에서도 종합 은메달을 추가했다.
2007
[유니버시아드 금메달리스트]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외에도 1000m, 3000m에서 은메달,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기량을 과시했다.
2008
[쇼트트랙 세계 챔피언 등극]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3000m 슈퍼 파이널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5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하며 세계 정상급 실력을 입증했다.
[예상치 못한 국가대표 탈락]
2008-2009 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상치 못하게 탈락하며 선수 생활의 첫 번째 큰 시련을 맞았다.
2009
[하얼빈 유니버시아드 3관왕]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에서 1000m, 1500m, 3000m 금메달을 휩쓸며 3관왕에 등극,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쇼트트랙 올림픽 좌절]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한번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으나 또다시 탈락하며 올림픽 출전의 꿈이 좌절되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전격 전향]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후, 본업이었던 롱 트랙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격 전향을 선언했다.
장거리 부문에 도전하여 불과 6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스피드스케이팅 국제 데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처음 출전했다.
5000m 디비전 B에서 4위를 기록하며 단숨에 디비전 A로 승격되는 기염을 토했다.
[5000m 한국 신기록 달성]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6분 25초 03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신기록을 경신,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강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재능 폭발]
캐나다 캘거리 월드컵 4차 대회 5000m에서 6분 16초 75로 또다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선수로서는 드물게 5000m에서 5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줬다.
[밴쿠버 올림픽 자격 획득]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5차 대회 5000m에서 6분 14초 67로 한국 신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월드컵 합산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2010
[10000m 한국 신기록]
일본 오비히로 아시아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 13분 21초 04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웠다.
[밴쿠버 올림픽 첫 메달!]
밴쿠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에 첫 빙상 메달을 안겼다.
이는 그가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아시아 최초 스피드 금메달]
밴쿠버 동계 올림픽 10000m에서 12분 58초 55의 대한민국 신기록 및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자, 그의 선수 경력에 길이 남을 신화적인 순간이었다.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스벤 크라머르가 코스 이탈로 실격하며 더욱 극적인 승리였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후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로 전향하며 놀라운 속도로 재능을 꽃피웠다. 밴쿠버 올림픽 10000m에서 세계 최강 스벤 크라머르의 실격이라는 행운도 따랐지만, 그가 세운 올림픽 신기록과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의 첫 금메달이라는 위업은 그의 피나는 노력과 끈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금메달은 한국 동계 올림픽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2011
[아시안게임 3관왕 달성]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스피드스케이팅 5000m, 10000m, 매스스타트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등극했다.
팀 추월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하며 아시아 무대 최강임을 입증했다.
[10000m 개인 최고 기록]
월드컵 7차 대회 10000m에서 12분 57초 27을 기록하며 2위에 올랐다.
이는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이자 한국 신기록이었다.
[세계선수권 은메달 추가]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5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무대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했다.
2013
[5000m 한국 신기록 경신]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 5000m에서 6분 07초 04를 기록하며 또 한 번 대한민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기록을 넘어섰다는 증거였다.
2014
[소치 올림픽 팀 추월 은메달]
소치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종목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세계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주력 종목에서의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했다.
2017
[아시안게임 최초 4관왕]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5000m, 10000m, 팀 추월, 매스스타트 등 4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역대 모든 종목 한국 선수를 통틀어 최초의 4관왕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빙상계의 역사를 다시 쓴 이승훈의 4관왕은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다재다능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기록이었다.
2018
[평창 올림픽 초대 챔피언 & 최다 메달리스트]
평창 동계 올림픽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초대 챔피언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며 올림픽 메달 6개(금2, 은3, 동1)를 기록, 대한민국 동계 올림픽 선수 중 최다 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선수 중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우뚝 섰다.
10000m에서도 본인의 기록을 갱신하며 4위에 올랐다.
안방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자신의 위상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 등극은 그의 노련함과 전략적인 레이스 운영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로써 이승훈은 한국 빙상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후배 폭행 징계]
후배 폭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간 국내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2022
[베이징 올림픽 최다 메달 경신]
베이징 동계 올림픽 매스스타트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개인 통산 올림픽 메달 6개(금2, 은3, 동1)를 기록했다.
이로써 역대 대한민국 동계 올림픽 선수 중 최다 메달 획득 단독 1위이자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선수 중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선수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르는 베이징에서 값진 동메달을 추가하며 끝까지 투혼을 보여줬다. 이는 동계 올림픽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며,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