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
쇼트트랙 선수, 지도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4:17
한국 쇼트트랙의 황제 안현수에서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되기까지 드라마틱한 선수 인생을 살았다. 대한민국과 러시아 국적으로 각각 올림픽 금메달 3관왕을 두 번(2006 2014) 달성했다. 쇼트트랙 역사상 유일하게 동계 올림픽 전 종목을 석권한 선수이다. 세계 선수권 6회 종합 우승 남자부 역대 최다 20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불멸의 전설로 평가받는다. 빙상계 파벌 갈등 치명적 부상 팀 해체 도핑 스캔들 등 수많은 역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쇼트트랙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1985
[쇼트트랙 황제의 탄생]
1985년 서울에서 안현수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94년 동계 올림픽 채지훈의 스케이팅에 영감을 받아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시작, 1996년 전국 남녀 학생 종별 대회에서 종합 우승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1996
[첫 종합 우승!]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996년 전국 남녀 학생 종별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쇼트트랙 신동으로서의 재능을 입증했다.
1999
[중학생, 쇼트트랙 샛별로]
명지중학교 재학 중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하며 쇼트트랙 샛별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그가 시니어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최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2002
[주니어 세계 챔피언 등극!]
2002년 1월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1000m와 1500m에서 우승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그가 성인 무대에 진입하기 전부터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올림픽 데뷔전, 불운의 충돌]
16세의 나이로 2002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특별 발탁되어 1000m 결승에 진출했다.
마지막 바퀴까지 선두를 다투었으나, 오노와 리자쥔의 몸싸움에 휘말려 연쇄 충돌로 메달을 놓쳤다.
그의 데뷔전은 불운한 충돌로 기억된다.
당시 안현수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외 국제대회 출전이 처음이었음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승에서 발생한 연쇄 충돌로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치며, 쇼트트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불운의 장면으로 남았다.
[세계선수권 계주 금메달]
2002년 4월 몬트리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김동성의 뒤를 잇는 차세대 쇼트트랙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인전 1000m 은메달과 3000m 슈퍼파이널 2위를 기록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컵 전 종목 석권!]
2002년 10월 춘천 ISU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500m, 1000m, 1500m, 3000m 전 종목을 석권하며 그의 전성기 시작을 알렸다.
이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세계 무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3
[아시안게임 3관왕]
2003년 일본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1000m, 1500m, 5000m 계주)을 달성하며 아시아 무대에서도 최고임을 입증했다.
[세계선수권 첫 종합 우승]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고 선수'의 서막을 열었다.
[세계신기록 8년 유지!]
2003년 10월 1500m, 12월 30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이 기록은 무려 8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이는 그의 탁월한 기량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기록이다.
2004
[세계선수권 2연패!]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500m를 제외한 전 종목 금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 2년 연속 세계 최강자임을 과시했다.
2005
[유니버시아드 폭행 사건]
2005년 오스트리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안현수 구타 사건이 발생, 그의 얼굴에 멍이 든 채 시상식에 오르면서 빙상계의 병폐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빙상연맹 임원진의 부패와 파벌 갈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감독 해임, 금품 수수 의혹, 퇴출 선수 복귀 등 대한빙상연맹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2015년 빅토르 안은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자신과 후배가 폭행을 당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는 그의 러시아 귀화 배경 중 하나로 꼽히는 주요 사건이다.
[세계선수권 3연패 달성!]
2005년 중국 베이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전 종목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우승을 달성, 남자부 유일의 3연패 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꾸준함을 보여주는 대기록이다.
['올림픽 불참' 선언]
2005년 7월, 대한빙상연맹이 구타 사건 관련 감독 재선임을 추진하자 안현수 등 폭행 피해 선수들과 학부모들이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심지어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불참까지 선언하며 빙상연맹 지도층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안현수는 여자팀에서 훈련해야 하는 등 극심한 파벌 갈등을 겪었다.
전재수 코치 해임, 코치진 교체 등 혼란 속에서 안현수는 한국체대 자퇴서 제출, 캐나다 유학까지 고려하며 쇼트트랙을 그만두려 할 정도로 갈등이 심각했다. 이 사건은 그의 러시아 귀화 결심에 큰 영향을 미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
[쇼트트랙 황제 등극!]
안현수,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1000m, 1500m, 5000m 계주)와 동메달 1개(500m)를 획득하며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로 단일 올림픽 전 종목 메달을 획득! '쇼트트랙 황제' 별명을 얻으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5000m 계주에서는 극적인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 대한민국에 14년 만의 계주 금메달을 안겼다.
2007
[세계선수권 5연패 금자탑!]
2007년 이탈리아 밀라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모든 종목 메달 획득 및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전인미답의 세계 선수권 5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쇼트트랙 황제'로서 그의 입지를 확고히 한 역사적인 기록이다.
2008
[훈련 중 치명적 부상]
2008년 1월 태릉선수촌 훈련 도중 펜스 충돌로 무릎 슬개골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충격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펜스 때문에 부상이 더욱 악화되었으며, 15개월 동안 4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재활에 매진해야 했다.
이 부상으로 남은 시즌 출전이 불가능해졌고, 2009년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으로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나설 수 없게 되는 등 선수 생활에 큰 위기를 맞았다. 그의 불운한 부상은 한국 빙상 시설의 문제점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9
[밴쿠버 올림픽 좌절]
2008년 무릎 부상 여파로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치러진 200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7위로 탈락하며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었다.
'황제'에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시련이었다.
2010
[SBS 해설위원 데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SBS 스포츠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선수로서의 날카로운 분석과 경험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짬짜미 논란 공론화]
안현수 부친의 폭로로 이정수 선수 관련 '윗선 외압' 의혹이 제기되며 2010 밴쿠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승부담합 '짬짜미 파문'이 공론화되었다.
이는 빙상연맹의 파벌 문제와 불투명한 운영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안현수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으나, 이 파문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기되고 훈련에 차질을 빚는 등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시 언론은 빙상계를 움직이는 '유라인'과 '전라인'의 파벌 싸움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비판했다.
[소속팀 해체, 설 곳 잃다]
성남시의 재정 악화로 소속팀인 성남시청 빙상팀이 2010년 12월 30일부로 해체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갈 곳을 잃은 안현수는 선수 생활의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해외 진출을 모색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11
[러시아, 한국인 코치 해고]
빅토르 안이 러시아에 이주한 후, 러시아 빙상연맹은 장권옥 감독과 최광복 코치 등 한국인 지도자들을 해고했다.
훈련 방식 불만, 장비 노하우 미공유, 독재 시도 등이 이유로 알려졌으며, 이는 빅토르 안의 한국인 코치진과의 갈등이 존재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황익환 감독의 증언을 통해 빅토르 안이 러시아 귀화 초기 한국인 지도자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심한 슬럼프에 빠졌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한국 빙상계의 해묵은 문제들이 해외 무대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현수, 빅토르 안으로!]
한국 빙상계의 파벌 갈등, 2008년 부상, 2010년 소속팀 해체 등으로 선수 생활이 어려워진 안현수가 러시아 빙상연맹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다.
이는 그의 선수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자 한국 쇼트트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12
[4년 만의 국제 무대 복귀]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은 2012년 2월 모스크바 월드컵 계주팀으로 국제 대회에 복귀, 약 4년 만에 빙판에 다시 섰다.
이는 '황제'의 재림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부상 후 첫 국제 금메달]
2012년 10월 캘거리 월드컵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부상 이후 약 5년 만에 첫 국제 대회 개인전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그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러시아 챔피언 등극]
2012년 12월 러시아 종합 선수권 대회에서 러시아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러시아 쇼트트랙의 에이스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2013
[러 쇼트트랙 첫 세계선수권 메달]
2013년 3월 헝가리 데브레첸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500m와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 선수권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명예 체육 명장 칭호]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 등 러시아 쇼트트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명예 러시아 체육 명장' 칭호를 수여받았다.
2014
[유럽선수권 4관왕!]
2014년 1월 독일 드레스덴 유럽선수권에서 4관왕에 오르며, 다가오는 소치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예고했다.
이는 '황제'의 기량이 여전히 세계 최정상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였다.
[빅토르 안의 화려한 부활!]
러시아 대표로 소치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빅토르 안은 금메달 3개(500m, 1000m, 5000m 계주)와 동메달 1개(1500m)를 추가하며 다시 한번 3관왕에 올랐다.
올림픽 쇼트트랙 역대 최다 금메달(6개) 및 최다 메달(8개) 타이기록을 세우며 '빙판의 황제'임을 재증명했다.
겨울 올림픽 역사상 2개 국적으로 금메달을 딴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다.
[푸틴의 '조국공헌훈장']
2014 소치 올림픽에서의 탁월한 스포츠 성과를 인정받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조국공헌 훈장' 4급을 수훈했다.
이는 러시아 국가에 대한 그의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명예로운 순간이다.
[NBC 선정 올림픽 MVP]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는 압도적인 활약으로 미국 NBC로부터 올림픽 최고 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그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6
[자랑스러운 한체대인 상 수상]
러시아 귀화 이후에도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훈련하며 2016년 3월 '자랑스러운 한국체대인 상'을 수상했다.
이는 그의 한국 빙상계와의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러시아 명예의 전당 입성]
2016년 7월, 러시아 올림픽 챔피언 명예의 전당에 19번째 별로 이름을 올리며 러시아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8
[평창 올림픽 출전 좌절]
모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국가 차원의 도핑 스캔들에 휘말리며 올림픽 출전이 불허되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도핑으로 기소되지 않았으나, '의심되는 대상'으로 분류되어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빅토르 안은 IOC에 출전 제외 이유 공개를 요구하는 서한까지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WADA 및 ISU의 추가 조사에서도 그에 대한 도핑 관련 위반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의 입상 기록도 유지되었다. 불확실한 이유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2019
['황제'의 깜짝 복귀]
은퇴를 선언한 지 약 5개월 만에 선수 복귀를 번복하고 2019-2020 시즌 선수로 복귀했다.
이는 팬들을 놀라게 한 동시에 '황제'의 식지 않는 쇼트트랙 열정을 보여주었다.
[복귀전 2관왕 달성]
선수 복귀 후 첫 월드컵인 2019-20 ISU 월드컵 1차 대회에서 2관왕(혼성계주,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을 차지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는 2022 베이징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높였다.
2020
['황제' 빅토르 안, 은퇴 선언]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부상으로 더 이상 현역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빅토르 안이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밝혔다.
쇼트트랙 역사에 길이 남을 '황제'의 전설적인 선수 커리어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중국 쇼트트랙 기술 코치]
선수 은퇴 후, 빅토르 안은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술 코치로 선임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김선태 감독과 함께 중국 팀을 이끌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준비했다.
2022
[성남시청 코치 무산]
빅토르 안이 국내 복귀를 위해 성남시청 빙상팀 코치직에 지원했으나, 과거 러시아 귀화 논란과 복잡한 빙상계 문제로 인해 논란이 일며 최종 임명은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귀화 당시 연금 수령과 '도덕성'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그의 성남시청 코치직 지원은 빙상지도자연맹의 반대 성명으로 큰 논란을 낳았다. 연금 일시금 수령 후 귀화했다는 비판과 함께, 당시 빙상계의 파벌 권력 싸움 및 정치적 개입 의혹까지 제기되며 코치직 임명이 결국 불발되었다. 그는 연금 전액 기부를 해명했으나 논란은 지속되었다.
2023
[모교에서 지도자 변신]
성남시청 코치직 무산 이후, 빅토르 안은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쇼트트랙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한국 빙상계에 복귀했다.
그는 국내 선수들뿐 아니라 해외 선수들의 전지훈련 코치로도 활동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금 논란 해명, 전액 기부]
러시아 귀화 당시 제기된 연금 일시금 수령 후 귀화 논란에 대해, 빅토르 안은 12년 만에 SNS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중국적 가능 여부를 확인했으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후 귀화를 결정했고, 수령한 연금 전액을 심장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과 후배 운동선수들을 위해 기부했다고 해명하며 오해를 풀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