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희극인, 시사풍자가, 정치인, 방송인

num_of_likes 83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3:31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희극인, 시사풍자가, 정치인, 방송인
report
Edit

개그계의 대부 김형곤은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시사풍자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로 독보적인 유행어를 만들었죠. 정계 진출을 꿈꿨으나 좌절을 맛보았고 2006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후배 최양락과의 폭행 사건은 그의 삶의 논란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유머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60

[개그계의 큰별, 탄생]

4형제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무학초등학교와 장충중학교, 중경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7

[연기 인생의 첫걸음]

연극배우로 처음 무대에 서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1980

[TBC 개그콘테스트 은상]

TBC 동양방송 개그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KBS에 합쳐지면서 KBS 소속이 되었다.

[시사 개그의 아이콘 등극]

KBS '유머 1번지'에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 시대를 꿰뚫는 시사 개그로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 같은 유행어를 만들며 당시 군사독재정권의 검열에도 굴하지 않고 날카로운 풍자를 선보였다.

그의 거침없는 시사풍자는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미움을 받아, 중간에 프로그램 방영이 중단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5

[최양락 집단 폭행 사건]

개인 운전기사가 최양락에게 고용되자 분노하여, 새벽 후배 희극 배우들과 최양락의 집에 쳐들어가 집단 구타했다.

최양락은 병원에 입원했고 김형곤을 폭행죄로 고소하여 당시 언론에 보도되는 등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1985년 8월 2일자 동아일보 12면에 게재되었다.

1987

[제1회 KBS 코미디대상 대상]

제1회 KBS 코미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개그계의 최고 스타임을 입증했다.

1998

[정치권 입문 선언]

개그맨으로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정계 진출의 꿈을 키웠으며,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99

[자민련 요직 역임]

자유민주연합에서 김종필 명예총재 특별보좌역과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 직위를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2000

[총선 출마와 고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민주연합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서울 성동구에 출마했으나, 임종석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하며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이후 뮤지컬 참여 등 다양한 연기자 활동을 했으며, 성적 소수자들의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6

[갑작스러운 영면]

평소와 달리 사우나 직후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운동을 한 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심장마비로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 시신은 연구용으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병원에 기증되는 등 마지막까지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유해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 소재의 청아공원에 안장되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