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영화 감독)
영화감독, 영화인, 기업인, 교육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3:04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거장. 영화감독 기획가 배우 기업가 교수까지 다방면에서 활약. 멜로 드라마의 명장으로 숱한 히트작을 연출. 영화인협회 이사장 역임하며 한국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 대종상 감독상 예술문화대상 수상으로 업적 인정.
1922
[영화인 최훈의 탄생]
훗날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길 최훈 감독이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한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1942
[첫 교원 생활 시작]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초등교원으로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훗날 영화 감독이 될 최훈의 의외의 첫 발걸음입니다.
1946
1947
[교원직 사직과 서울 정착]
교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남하하여 서울 서대문구에 정착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가 영화계로 발을 들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948
[아세아영화공사 사장 취임]
한국 영화산업의 초창기, 아세아영화공사의 사장으로 취임하며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직책을 넘어 한국 영화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1954
1955
1957
[감독 데뷔작 '모녀']
마침내 영화 《모녀》를 통해 감독으로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그의 화려한 시작이었습니다.
1961
1964
[기획가로 변신]
영화 《슬픈 미소》를 통해 감독뿐 아니라 영화 기획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하며 한국 영화의 다양한 분야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965
1966
[영화배우로 깜짝 데뷔]
자신의 연출작은 아니지만, 영화 《나는 왕이다》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색다른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1968
[멜로 드라마 명성 굳히기]
영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연출하며 정통 멜로 드라마의 거장으로 확고한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69
1970
[영화인협회 감독위원장]
한국 영화계를 위해 헌신하며 영화인협회 감독위원장을 맡아 영화인들의 권익 보호와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71
1972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맡아 한국 영화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영화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73
[대종상 감독상 수상]
영화 <수선화>를 통해 제12회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한국 영화계의 최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1974
1975
[동국대 전임교수 임용]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며 한국 영화의 미래를 이끌 인재 양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88
1993
[예술문화대상 수상]
한국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예술총연합회로부터 예술문화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5
[영화인 최훈, 영면하다]
한국 영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최훈 감독이 2005년 11월 6일, 8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열정과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