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각본가, 미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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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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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영화계를 개척하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거장 - 배우 최은희와의 세기의 로맨스 그리고 납북과 탈출이라는 드라마틱한 삶 - 수많은 명작을 남기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리더 - 말년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진정한 영화인

주요사건만
최신순

1925

[영화 거장의 탄생]

대한민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을 영화감독 신상옥이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태어났습니다.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가며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성장할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호적상의 출생년월일은 1925년 9월 12일이지만, 일설에는 1920년 9월 12일생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영화감독사전에는 1926년 9월 12일생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1945

[미술학교 중퇴]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를 중퇴하며 예술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는 훗날 그가 영화 미술감독으로 데뷔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1946

[화단 데뷔]

서양화가로 화단에 첫 등단하며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가 드러나는 초기 행보였습니다.

1948

[영화 미술감독 데뷔]

영화 《희망의 마을》을 통해 영화 미술감독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그가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1949

[영화 조감독 데뷔]

이듬해 영화 《파시》의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 제작의 실질적인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밑거름이 됩니다.

1952

[영화감독 데뷔]

16mm 영화 《악야》를 통해 마침내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1953

[최은희와 결혼]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 최은희와 결혼하며 영화계 대표 부부로 탄생했습니다.

이는 훗날 그들의 운명을 뒤바꿀 파란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1961

[한국 영화의 황금기 개척]

《성춘향》으로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36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의 흥행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같은 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까지 흥행에 성공시키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손에서 수많은 흥행작과 예술작이 탄생하며 '신필름' 시대를 열었습니다.

1961년은 그의 대표작인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등 여러 작품이 개봉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해입니다. 특히 《성춘향》은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36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1962

[대종상 첫 수상]

제1회 대종상에서 《연산군》으로 작품상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 최고 권위의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연출력을 공인받은 순간이었습니다.

1964

[거장의 작품 행진]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벙어리 삼룡》으로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연이어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연이은 명작 탄생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1978

[최은희 배우 납북]

홍콩에서 아내인 배우 최은희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신상옥 감독의 삶에 가장 큰 비극이자 전환점이 됩니다.

[신상옥 감독 납북]

아내의 행방을 찾던 신상옥 감독마저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당했습니다.

세계 영화계를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건이자, 그의 삶은 예측 불가능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1985

[북한 영화 제작]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아 《소금》, 《불가사리》 등 여러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던 시기였습니다.

1986

[극적인 탈북 성공]

최은희 배우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여 납북 생활 8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세기의 탈출극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습니다.

1990

[테러 사건 영화화]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다룬 반공 영화 《마유미》를 제작했습니다.

자신의 납북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통해 현실의 비극을 다루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1994

[칸 영화제 심사위원]

세계적인 권위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며 다시 한번 국제 영화계에서의 위상을 확인시켰습니다.

그의 영화적 깊이와 통찰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2000

[고국으로 귀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삶의 종착역에 도달한 평온한 시기였습니다.

2006

[금관문화훈장 추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영화 인생이 국가적으로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영화 거장의 별세]

간 이식 수술 후 건강 악화로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타계는 한국 영화계에 큰 별이 진 순간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의 마지막이었습니다.

향년 80세.

2007

[추모 영화제 시작]

그를 기리는 '공주 신상옥 청년 영화제'가 시작되어 해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 정신은 후대에까지 이어지며 한국 영화의 미래를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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