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배우)
배우, 기업인, 정치인, 문화예술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2:46
배우 치과의사 기업인 정치인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대한민국의 원로 예술인. 1960년대 한국 영화 황금기를 이끈 대표 배우이자 성공적인 사업가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 예술 발전에 기부하며 사회 환원에도 앞장섰다.
1928
1947
1958
1960
[영화배우 전격 데뷔]
32세 늦깎이 나이에 조긍하 감독의 제안으로 영화 <과부>의 '성칠이' 역을 맡아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1961
[<마부> 베를린 영화제 수상]
출연작 <마부>가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수상하며 그의 연기 경력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
1962
[제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
데뷔 2년 만에 영화 <연산군>으로 제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연기파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1963
[금호극장 인수]
배우 직업의 불안감을 느끼고 친구와 함께 서울 금호동의 동시 상영관 '금호극장'을 인수, 새로 문을 열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1964
[<빨간 마후라> 아시아영화제 수상]
그의 히트작 <빨간 마후라>로 제11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대중들에게 심었다.
1968
[영화인 폭행 사건]
영화감독 정진우를 폭행하고 동료 배우들을 다치게 한 혐의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이후 피해자 정진우 감독의 고소 취하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서울예총회관 회의실에서 박노식 배우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던 중, 영화감독 정진우의 뺨과 입 언저리를 때려 전치 10일 상해를 입혔고, 재떨이를 던져 동료 배우 황정순, 김지미 등을 다치게 한 혐의로 9월 16일 종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서울시경수사과는 신영균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하고 서울지검에 송치했으나, 피해자 정진우 감독이 고소취하장을 제출하며 사건이 종결되었다.
1970
[한국예술문화단체 부회장 당선]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에 당선된 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부회장으로도 선출되며 문화예술계 단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77
[명보극장 인수]
7억 5천만원을 들여 명보극장을 사들여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등 외국 영화와 한국 영화를 배급·상영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8
1981
[예총 회장 선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제15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1984년까지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1985
1992
[한국 맥도날드 합작회사 설립]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사와 49:51 비율로 54억원을 투자하여 합작회사 '맥신산업'을 설립, 한국 맥도날드 사업에 참여했다.
1996
[제15대 국회의원 당선]
신한국당 소속 전국구 비례대표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999
[신영 영화박물관 개관]
제주도에 사재 100여억원을 들여 한국 '최초'이자 '최대'의 영화박물관인 '신영 영화박물관'을 개관했다.
2004
[정치 은퇴 선언]
"새로운 정치를 위해 후배들에게 의자를 물려주고 떠날 때가 됐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 은퇴를 시사했다.
2010
[500억원 사재 기부]
영화 및 예술계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제주도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상당의 사재를 영화계 및 문화예술계의 공유재산으로 기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2011
2012
[연극 무대 65년 만의 복귀]
서울대학교 연극동문회 제작 연극 <하얀 중립국>에 출연하며 65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