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배우)

대한민국연표
1923
[전설의 탄생]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 전설적인 배우 김진규가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일은 공식 기록과 도서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그의 삶만큼이나 흥미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공식적인 호적상 출생일을 사용하여 나이를 계산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서 《내 운명의 별 김진규》(2009년, 21세기북스)에는 1922년 4월 16일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4
이후 조선연예주식회사 연구생으로 활동했다.
1945
[연극 무대 데뷔]
가수에 이어 연극 '살구꽃'으로 연극배우로서 첫 무대에 올랐습니다.
광복 후에는 장동휘 등과 극단 장미를 창립하여 '아름다운 새벽'을 선보이며 연기 활동을 본격화했습니다.
약초(若草) 연예주식회사 연구부에서 연기를 배웠다.
1955
[스크린 정복 시작]
이강천 감독의 영화 '피아골' 주연으로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한국 영화계의 거목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영화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59
[김보애와 재혼]
이혼 후 같은 해, 배우 김보애와 재혼하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 결혼은 훗날 재결합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인연이 됩니다.
1960
[첫 남우주연상 수상]
제3회 부일영화상에서 영화 '비극은 없다'로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선두주자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61
1962
[아시아까지 흔든 연기]
제5회 부일영화상에서 '성춘향'으로 3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로 우뚝 섰습니다.
1964
1965
[벙어리 삼룡으로 휩쓸다]
영화 '벙어리 삼룡'으로 제1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와 제8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그의 연기 인생에서 또 하나의 빛나는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1966
[대종상 남우주연상]
제5회 대종상에서 영화 '태양은 다시 뜬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의 권위 있는 상들을 휩쓰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67
1969
1970
[영화 제작자로 변신]
영화 '성웅 이순신'을 제작하며 한국 영화계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활동 영역은 연기, 연출을 넘어 제작까지 확대되었습니다.
1973
1976
1977
[난중일기로 대종상]
제16회 대종상에서 영화 '난중일기'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MBC 연예대상 영화배우 부문까지 수상하며 원로 배우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했습니다.
1986
1992
1997
[김보애와 재결합]
배우 김보애와 재결합하며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김보애와 부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98
[큰 별이 지다]
한국 영화의 큰 별이었던 배우 김진규가 1998년 6월 18일, 76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영화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망지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