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춘
영화배우, 악역 전문 배우, 연극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2:36
이예춘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 영화계를 풍미한 악역 전문 배우입니다. 특히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성춘향에서 변학도 역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었으며 강렬한 악역 연기로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아들 이덕화 또한 유명 배우로 활동하며 대를 이어 연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독보적인 연기는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19
[악역 배우의 탄생]
훗날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악역 전문 배우, 이예춘이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훗날 스크린을 장악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예춘은 1919년 7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1940
[연기 인생의 서막]
이예춘은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악극단 '약초'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악역 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무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940년 악극단 '약초'에 입단하여 연기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악역 연기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45
[자신만의 극단 창단]
이예춘은 연기자로서의 역량을 넓히기 위해 직접 악극단 '무궁화'를 창단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배우를 넘어 극단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악극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이예춘은 1945년 악극단 '무궁화'를 창단하여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55
[스크린 데뷔작 '피아골']
악극 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온 이예춘은 영화 '피아골'을 통해 스크린에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영화 '피아골'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김진규, 허장강, 노경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1961
[변학도로 국민 배우 등극]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성춘향'에서 악랄한 '변학도' 역을 맡아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가 당시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예춘은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고, "네 이놈! 한 수 못 지으면 당장 볼기를 맞을 테니 그리 알아라!"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성춘향'에서 '변학도' 역으로 출연하여 뛰어난 악역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이예춘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2
[연기력 인정, 대종상 수상]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의 명연기를 인정받아 제1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자, 한국 영화계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확고히 한 사건입니다.
1962년 '현해탄은 알고 있다'로 제1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연기 경력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65
[브라운관 활동 시작]
이예춘은 영화뿐만 아니라 TV 브라운관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TBC 드라마 '형사수첩 - 지옥의 호수'에 출연하며 다양한 매체에서 대중과 만났습니다.
1965년 6월 11일 TBC 드라마 '형사수첩 - 지옥의 호수'에 출연했습니다. 이는 영화배우로서의 명성을 TV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8
[건강 이상 시작]
이예춘은 활발한 연기 활동 중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이라는 지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그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68년부터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병은 1977년 그의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75
[아들과 함께 스크린에]
아들 이덕화의 영화 데뷔작인 '공포의 이중인간'에 함께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에 부자 배우의 대를 잇는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연기 명가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1975년 이용민 감독의 영화 '공포의 이중인간'에 출연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의 아들 이덕화의 영화 데뷔작으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1977
[한국 영화계의 거목, 영면]
1977년 11월, 아들 이덕화의 교통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은 이예춘은 지병이 악화되어 향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악역 연기 외길을 걸으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1977년 11월 23일,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아 1968년부터 앓아 온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이 악화되어 사망했습니다. 그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