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희 (1944년)

영화배우, 한국 영화계의 전설, 트로이카 배우, 국제적 배우

num_of_likes 139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2:3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연혁 피인용 수 1
영화배우, 한국 영화계의 전설, 트로이카 배우, 국제적 배우
report
Edit

한국 영화계의 전설 배우 윤정희는 1960~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한 축이었다. 데뷔 첫 해 22편 포함 총 300여 편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한국 배우 최초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화 시로 칸 영화제 10분 기립박수와 LA 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알츠하이머 투병 끝에 2023년 파리에서 별세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44

[영화배우 윤정희, 부산에서 출생]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부산에서 한 대학 교수의 딸로 태어나, 유년기를 밀양과 광주에서 보내며 발레와 노래를 배웠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1944년 7월 30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에서 대학 교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경상남도 밀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후, 전라남도 광주에서 성장했으며, 유치원 때부터 발레와 노래를 배우며 예술적 재능을 키웠습니다.

1967

[영화 《청춘극장》으로 화려한 데뷔 및 8개 신인상 석권]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동영화사 강대진 감독의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습니다. 첫 해에만 22편의 영화를 촬영하는 등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대종상 등 8개 신인상을 휩쓸며 한국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1967년, 윤정희는 1,200대 1이라는 경이로운 경쟁률을 뚫고 합동영화사의 강대진 감독의 영화 《청춘극장》의 주연으로 발탁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데뷔 첫 해에 무려 22편의 영화를 촬영하는 압도적인 활동량을 보여주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제6회 대종상 신인상, 제2회 백마상 신인여우상 등 8개의 신인상을 석권하며 '영화계의 샛별'로 떠올랐습니다. 이와 함께 청룡영화제 인기상을 수상하며 대중적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 개막]

문희, 남정임과 함께 60, 70년대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자 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데뷔 이후 7년간 무려 28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촬영이 많을 때는 하루 3편을 동시에 찍기도 했습니다.

윤정희는 문희, 남정임과 더불어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지배한 '여배우 트로이카'의 한 축을 담당하며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을 겸비한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데뷔 후 7년 동안 280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가히 경이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았으며, 촬영이 많을 때는 하루에 3편의 영화를 동시에 소화하기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 유학 전까지 청룡상, 대종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24회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68

[영화 《안개》로 연기상 연속 수상]

영화 《안개》로 제11회 부일영화상 신인상과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데뷔 후 꾸준히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윤정희는 1968년 영화 《안개》를 통해 제11회 부일영화상 신인상과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데뷔 초부터 연기력으로도 평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영화 《장군의 수염》으로 제3회 백마상 인기여우상을 수상하며 대중적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1969

[인도국제영화제 인기상, 백마상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독짓는 늙은이》로 제4회 인도국제영화제 인기상을, 《지하실의 7인》으로 제4회 백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윤정희는 1969년 영화 《독짓는 늙은이》를 통해 제4회 인도국제영화제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영화 《지하실의 7인》으로 제4회 백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제12회 부일영화상 인기여우상, 제6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등 국내 주요 영화제에서도 꾸준히 수상하며 최고의 여배우임을 입증했습니다.

1970

[《독짓는 늙은이》로 최우수연기상 및 여우주연상 겹경사]

영화 《독짓는 늙은이》로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및 제13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1970년 윤정희는 영화 《독짓는 늙은이》에서의 열연으로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과 제13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다시 한번 확고히 인정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 애독자인기상, 부일영화상 인기여우상,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71

[주요 영화제 여우주연상 휩쓴 연기파 배우]

제10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제7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제14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등 다수의 주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1971년 윤정희는 영화 《해변의 정사》로 제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영화 《첫경험》으로 제14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그리고 영화 《분례기》로 제6회 대일영화상 여우주연상과 핑크리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한 해 동안 여러 작품으로 주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이 해 제10회 대종상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72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석화촌》으로 제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인기와 국내 최고 배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영화 《무녀도》로 제18회 아시아영화제 인기여우상을 받았다고도 하지만 확인이 안됩니다.

윤정희는 영화 《석화촌》으로 제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국내 영화계에서 최고의 배우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 애독자인기상과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도 수상했습니다. 1972년 영화 《무녀도》에서의 뛰어난 연기로 제18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인기여우상을 수상하며 아시아권에서의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확인이 안됨). 

[뮌헨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운명적인 첫 만남]

독일 뮌헨 문화올림픽에서 윤이상 오페라를 관람하던 중,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처음 만나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1972년, 윤정희는 뮌헨 문화올림픽과 윤이상 선생의 오페라 《심청이》가 동시에 열리는 독일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윤이상 선생의 소개로 둘은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운명적인 관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백건우는 뮌헨에 연주 여행차 방문한 길에 오페라를 보러 온 것이었습니다.

1973

[배우 활동 중단 선언, 프랑스 유학길 올라]

데뷔 때부터 품었던 프랑스 유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유학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1973년, 윤정희는 배우로서 정점에 있을 때 파격적으로 프랑스 유학을 발표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데뷔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유학을 위해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자리에서 직접 유학 계획을 밝히며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녀의 용기 있는 결정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유학 전 아시아영화제 및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궁녀》로 제19회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석화촌》으로 제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유학 전까지 작품 활동과 수상을 이어갔습니다.

윤정희는 1973년 영화 《궁녀》로 제19회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배우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영화 《석화촌》으로 제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과 제16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영화 《효녀 심청》으로 제1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마지막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과 주요 영화제 수상을 이어가며 최고의 배우로서의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1974

[파리 유학 중 백건우와 운명적 재회 및 열애 시작]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평범한 학생으로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파리에서 2년 전 뮌헨에서 만났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우연히 재회하며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1974년, 윤정희는 서강대학교 총장 신부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며 평범한 학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교포들이 자주 찾는 파리의 한 식당에서 2년 전 뮌헨에서 만났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우연히 재회했습니다. 연락 없이 지내던 두 사람은 이 만남을 계기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75

[백건우와 몽마르트 언덕 동거 후 결혼, 파리 정착]

백건우와 비밀리에 몽마르트 언덕에 작은 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고, 이후 화가 이응노 선생 앞에서 결혼 계획을 알리며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윤정희는 파리에서 백건우와 열애를 이어가던 중,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몽마르트 언덕에 작은 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부모님처럼 모시던 화가 이응노 선생 앞에서 두 사람의 결혼 계획을 알리며 세상에 관계를 공개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백건우와 결혼한 후 파리에 정착했으며, 당시 실직자나 다름없었던 상황에서 남편의 비서 역할을 도맡으며 음악 활동을 도왔습니다. 이들은 슬하에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딸 백진희를 두었습니다.

1977

[영화 《야행》으로 현대영화비평가그룹상 특별상 수상]

영화 《야행》으로 제3회 현대영화비평가그룹상 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77년 윤정희는 영화 《야행》에서의 연기로 제3회 현대영화비평가그룹상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프랑스 유학 및 결혼 이후에도 대한민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발하게 배우 활동을 이어갔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20여 편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삶을 지속했습니다.

1994

[영화 《만무방》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및 긴 공백기 시작]

영화 《만무방》에 출연하며 제32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16년간 영화 출연을 하지 않아 대중에게는 추억 속 배우로 기억되었습니다.

1994년, 윤정희는 영화 《만무방》에 출연하여 제32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16년 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으면서 대중들에게는 '추억 속의 배우'로 기억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은퇴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1995

[제19회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 위촉]

제19회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국제 영화계에서 활동했습니다.

1995년 9월 6일, 윤정희는 제19회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한국 영화계를 넘어 국제적인 시각으로 영화 작품들을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영화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안목을 인정받은 것으로, 배우 활동 외에도 영화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중요한 경력입니다.

1998

[청룡영화상 심사위원 역임 (1998~2006)]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윤정희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 중 하나인 청룡영화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오랜 기간 심사위원직을 맡으며 한국 영화의 작품성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는 그녀가 단순한 배우를 넘어 한국 영화계에 미친 영향력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2010

[영화 《시》로 16년 만에 복귀, 칸 영화제 기립 박수]

16년 만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주연으로 복귀했습니다.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대되어 10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0년, 윤정희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16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습니다. 이 작품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대되었고, 윤정희는 주연 배우로서 영화 상영 후 무려 10분간 기립 박수를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여전히 세계적으로 통하는 연기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순간이었으며, 많은 언론은 그녀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유력하게 점쳤습니다.

[영화 《시》로   제47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시》로 제47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제3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1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하며 복귀작으로 국내 주요 상을 휩쓸었습니다.

윤정희는 2010년 복귀작 영화 《시》를 통해 제47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제3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1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하며 국내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16년의 공백기가 무색하게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배우임을 증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제12회 뭄바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세계적 명성의 카이로 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 수상]

제34회 카이로 국제영화제에서 리즈 테일러 등 세계적인 배우들이 수상했던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또한 제4회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여우주연상도 수상했습니다.

2010년 12월 1일, 윤정희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제34회 카이로 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상은 과거 리즈 테일러와 같은 전설적인 배우들이 받았던 상으로, 한국 배우로서는 윤정희가 이 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이어서 제4회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서 그녀의 연기력과 업적을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2011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및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수상]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훈했으며, 제13회 필리핀 시네마닐라 국제영화제와 제37회 LA비평가협회(LAFCA)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11년, 윤정희는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훈하며 프랑스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영화 《시》로 제13회 필리핀 시네마닐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이어, 특히 미국에서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제37회 LA비평가협회(LAFCA)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연기력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합니다.

2019

[알츠하이머병 투병 사실 공개, 오랜 투병 사실 밝혀져]

남편 백건우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투병 사실이 공개되었으며, 마지막 영화 《시》 촬영 당시에도 치매 증상을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2019년,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통해 윤정희의 알츠하이머병 투병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백건우는 방송에 출연하여 그녀의 근황을 언급하며,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 《시》를 촬영할 당시에도 이미 치매 증상을 보였을 정도로 10년 넘게 알츠하이머병과 싸워왔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 힘든 상황에서도 그녀는 제20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과 제8회 대한민국 베스트 스타상 베스트 공로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23

[한국 영화계의 별, 알츠하이머 투병 끝에 영면]

알츠하이머병 투병 끝에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78세로 타계했습니다. 남편 백건우와 장녀가 임종을 지키며 영원한 작별을 고했습니다.

오랜 알츠하이머병 투병으로 건강이 악화된 윤정희는 2023년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78세로 타계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남편 백건우와 딸 백진희가 함께 지켰으며, 한국 영화계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배우의 영면을 애도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고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