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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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태평양 영화제12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1967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청룡영화상 1967 남우주연상
대종상영화제대종상영화제 1964 남우주연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1963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청룡영화상 1963 남우주연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1961 남우주연상
베를린국제영화제베를린국제영화제 1961 은곰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1960 남우주연상
부일영화상부일영화상 1959 남우주연상
서울시 문화대상서울시 문화대상 1959 연극부문
부일영화상부일영화상 1958 남우주연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1957 특별상 (희극상)
경성 수송보통학교
경성 수송보통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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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영화인, 연극인, 한국영화 거장 ★ 영화/드라마 배우

한국 영화사의 황금기를 이끈 국민 배우 김승호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2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 등 한국 영화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인 선구자입니다. *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18

[출생]

김승호(본명: 김해수)는 1918년 7월 13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30

[배우 활동 시작의 서막]

1930년대 중반, 김두한의 소개로 동양극장 청춘좌에 발을 들여놓으며 연극배우로서의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위대한 배우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1945

[자유극장 창립 참여]

광복 이후, 새로운 연극의 시대를 열 자유극장의 창립 단원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는 해방된 조국에서 그의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소식이었습니다.

1946

[영화배우 데뷔]

영화 《자유만세》에 출연하며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다져온 연기력을 바탕으로 영화배우로서도 눈부신 활약을 예고했습니다.

1956

[《시집가는 날》 맹진사 열연]

영화 《시집가는 날》에서 맹진사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그에게 대중적 인기를 안겨주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7

[아시아영화제 특별상 수상]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상(희극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은 국내를 넘어 아시아 무대에서도 인정받으며, 명실상부한 스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1958

[제1회 부일영화상 수상]

제1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 최고 권위의 상을 가장 먼저 거머쥐었습니다.

이는 그가 당대 최고의 배우임을 입증하는 기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59

[부일영화상 2연패]

제2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수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같은 해 제8회 서울시 문화대상 연극부문까지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60

[4.19 혁명 당시 해프닝]

4.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 관련 연설로 인해 자택이 습격받는 해프닝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김두한의 도움으로 오해가 해소되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

제7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무대에서의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국제적인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1961

[베를린 은곰상 쾌거]

영화 《마부》로 제1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세계 3대 국제영화제 본상 수상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김승호 배우의 은곰상 수상은 당시 한국 영화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수상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는 후대 영화인들에게 큰 자부심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세계최초'의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의 업적은 한국 영화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1963

[제1회 청룡영화상 수상]

제1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에서도 '최초' 수상자라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한국 영화 시상 역사의 중요한 시작을 함께 했습니다.

1964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3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의 주요 시상식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의 연기력은 국내 모든 권위 있는 상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1967

[영화인협회 이사장 취임 및 연속 수상]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배우 활동을 넘어 한국 영화계 발전에 기여하는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동시에 제14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와 제5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다시 수상하며 여전히 최고의 배우임을 증명했습니다.

1968

[대한민국 영화계 큰 별 지다]

고혈압으로 영면했습니다.

짧은 생애 동안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는 영원히 '국민 배우'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연기 혼은 한국 영화사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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