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강

영화배우, 연극배우, 영화 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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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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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전설적인 명품 조연 허장강은 짧고 굵은 삶을 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20여 년간 3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상 손꼽히는 다작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뚝섬의 물이 마를 소냐 기나긴 강물처럼 오래 살고 크게 성공하라는 의미의 예명 장강처럼 영원히 기억될 연기를 펼쳤습니다. 배우 허기호 허준호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한국 영화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거장입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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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전설의 시작, 허장강 탄생]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을 명배우 허장강이 일제 강점기 조선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뚝도리(현 서울 성수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허장현이었으나, 훗날 '기나긴 강물처럼 오래 살고 크게 성공하라'는 의미의 예명 '장강'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1944

[무대 위의 첫발]

허장강은 태평양악극단 소속으로 연극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광복 후에는 반도가극단에 합류하며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꾸준히 쌓아갔습니다.

1954

[스크린 첫 주연, 영화 데뷔]

허장강은 영화 <아리랑>의 주연을 맡으며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약 20여 년간 무려 3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기록을 세웠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1961

[첫 해외 수상 쾌거!]

허장강은 제9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63

[부일영화상 수상]

제6회 부일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국내 영화계에서도 그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1966

[청룡영화상 수상]

제4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68

[부일영화상 재수상]

제11회 부일영화상에서 또다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변함없는 연기력을 과시했습니다.

1970

[청룡영화상 재수상]

제7회 청룡영화상에서 다시 한번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되며 그의 연기 스펙트럼과 대중적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1972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에서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올랐습니다.

1974

[대종상 남우조연상]

제13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1975

[대종상 특별공로상]

제14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며, 평생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기렸습니다.

[아시아영화제 재수상]

제2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또다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돌연한 죽음, 별이 지다]

연예인 축구 대회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국립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향년 51세를 일기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한국 영화계는 그의 죽음에 큰 슬픔에 잠겼으며, 그는 사망하기까지 약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살아있는 전설로 남았습니다.

'뚝섬의 물이 마를 소냐, 기나긴 강물처럼 오래 살고 대성하라'는 뜻으로 지어진 그의 예명 '장강'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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