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가수, 트로트 가수,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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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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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관
가수, 트로트 가수,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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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아이콘 해뜰날로 전국민적 사랑을 받은 트로트 레전드. • 태진아와 환상의 콤비로 트로트 4대 천왕 시대를 열며 가요계 부흥 주도. •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노래로 재기하며 대중에게 위로와 희망 선사. • 대한가수협회 회장 역임 등 후배 양성 및 가요계 발전에 기여한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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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트로트 거장 탄생]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한국 트로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가수로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와 한국전쟁으로 실종된 아버지의 영향 속에 자랐습니다.

1965

[가수 데뷔 준비 시작]

전주영생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 오아시스 레코드 손진석 사장을 만나 본격적인 가수 트레이닝을 받으며 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1967

['인정많은 아저씨' 데뷔]

정통 트로트 '인정많은 아저씨'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합니다.

당시 남진, 나훈아의 전성기 속에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무명 시절을 보냅니다.

1971

['세월이 약이겠지요'로 인지도를 얻다]

부르스 느낌의 곡 '세월이 약이겠지요'를 발표하며 점차 대중에게 송대관의 이름을 알리고 방송 출연 기회를 늘려갑니다.

1975

['해뜰날' 메가 히트]

자작곡 '해뜰날'이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릅니다.

희망찬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로 당시 대세 가수들을 제치고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1976

[3대 가요제 석권 및 가수왕]

'해뜰날'의 대히트에 힘입어 방송 3사 가요대상을 석권하고 명실상부한 '가수왕'에 등극하며 당대 최고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합니다.

같은 해 영화 '해뜰날'을 통해 스크린에도 데뷔합니다.

1980

[가요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약 10년간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1981

['해뜰날' 美빌보드 1위곡 표절]

1975년 발표한 그의 히트곡 '해뜰날'이 미국의 제이 가일즈 밴드(J.

Geils Band)의 'Centerfold'에 표절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Centerfold'는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하며 '세계최초' 한국곡 표절 빌보드 1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웁니다.

당시 한국과 미국 간 저작권 조약이 전혀 없고 국내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전무한 상황이라 송대관은 이를 웃고 넘겼다고 회고했습니다.

1988

[귀국 후 재기 발판 마련]

약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혼자랍니다'를 부르며 다시 대중에게 인지도를 얻기 시작합니다.

1989

['정 때문에'로 화려한 재기]

'정 때문에'를 발표하여 20만장 레코드 판매, 라디오 차트 3개월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재기합니다.

이 시기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 체제를 구축하며 트로트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1998

['네 박자' 표절 판결 승소]

그의 곡 '네 박자'가 미국의 가수 엥쥬(Engu)의 'Sorry, sorry, I am sorry'에 표절당합니다.

이 무렵 한미 저작권 조약이 체결되어 이의를 제기, 표절 판결을 받아내 권리를 지켜냈습니다.

이 사건은 국내 저작권 개념이 확립된 이후 이루어진 중요한 판례 중 하나입니다.

2002

['유행가'로 젊은 층 사로잡다]

아내 이정심이 작사한 '유행가'를 발표, 화려한 의상과 엇박자 댄스로 젊은 층에게도 큰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 초반 송대관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합니다.

2004

[태진아와 '이가탄' 모델 활동]

절친 태진아와 함께 명인제약 '이가탄'의 전속모델로 발탁되어 2009년까지 오랜 기간 동안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광고 스타로 활약합니다.

2008

[대한가수협회 회장 취임]

남진에 이어 제2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가요계 발전에 기여합니다.

또한 가수 김양을 스카우트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하는 등 후배 양성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입니다.

2009

[정읍 송대관 가요제 첫 개최]

고향 정읍시의 홍보와 차세대 트로트 유망주 발굴을 목표로 '정읍 송대관 가요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어 트로트 신예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3

[부동산 투자 사기 혐의 피소]

캐나다 교포 A씨에게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수억 원을 받고도 개발 및 투자금 반환을 하지 않은 혐의로 아내와 함께 피소되며 큰 논란에 휩싸입니다.

충남 보령시 일대 토지 개발 분양 투자금 4억 1400만원과 음반 홍보 자금 1억원 미변제 혐의를 받았습니다.

2014

[1심 유죄 판결 및 아내 구속]

부동산 사기 혐의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아내는 징역 2년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됩니다.

송대관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소합니다.

[KBS, MBC 출연 정지]

부동산 사기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KBS와 MBC로부터 방송 출연 정지 처분을 받게 되어 대중과의 만남이 어렵게 됩니다.

2015

[항소심 무죄 판결 및 '딱 좋아']

항소심 재판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아 사기 혐의를 벗습니다.

재판부는 그가 사건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가 희박하다고 밝혔습니다.

무죄 판결 후 '딱 좋아'를 발표하며 재기를 다짐합니다.

아내 이정심은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송대관은 "사필귀정이다. 팬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며 앞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살겠다"는 심경을 밝혔습니다.

[방송 출연 정지 해제]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후, KBS는 11월 18일, MBC는 11월 24일 그의 방송 출연 정지 처분을 해제하며 다시 대중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대법원 무죄 확정]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억울했던 부동산 사기 혐의를 완전히 벗고 명예를 회복합니다.

3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2020

[트롯 100년 가왕상 수상]

제1회 트롯어워즈에서 '트롯 100년 가왕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트로트 역사에 남긴 그의 공로와 위상을 다시 한번 인정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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