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가수, 작사가, 작곡가, 영화 감독, 소설가, 음반 제작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46:51
허스키 보이스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국민 가수 김수희! 미8군 무대에서 시작해 너무합니다 멍에 남행열차 애모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습니다. 특히 남행열차로 여자 조용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애모는 역주행 신화로 대상을 거머쥐었죠. 단순히 노래만 부른 것이 아닙니다. 소설가 영화 감독 음반 제작자로도 활약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즐긴 예술가 바로 김수희입니다.
1953
[국민가수 김수희 탄생]
허스키한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국민가수 김수희가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운명처럼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70
[미8군 무대 데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18세의 나이에 미8군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곳에서 김수희는 록, 블루스, 팝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키우게 됩니다.
1972
[싱어송라이터의 시작]
가수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사가와 작곡가로도 활동을 시작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훗날 김훈의 '나를 두고 아리랑'을 작사·작곡해 히트시켰고, 자신의 곡들도 직접 만들게 됩니다.
1976
[솔로 정규 1집 발표]
'너무합니다', '남포동 부르스', '정거장' 등이 수록된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대중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해 다시 미8군 무대로 돌아가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78
['너무합니다' 역주행]
앨범 발표 3년 만에 '너무합니다'가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 신청곡으로 전국에 퍼지면서 김수희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대중가수로서의 재도약 기회를 잡게 됩니다.
1982
['멍에' & 딸 공개]
'멍에'를 발표하며 서럽게 꺾어 부르는 파격적인 창법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임신 중 녹음했으며, 아이를 숨기라는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방송 무대에서 딸을 공개하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1983
[대마초 사건 연루]
'멍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중,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방송 정지와 연예인협회 제명 처분을 당하며 위기를 맞았습니다.
10월 8일 방송 정지, 10월 10일 한국연예인협회에서 제명 처분 당함.
[대마초 무죄 복귀]
약 20일간의 진실 공방 끝에 대마초 사건에 대해 무죄 판정을 받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한국연예인협회의 제명 처분도 철회되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4
['설(雪)' 베스트셀러]
소설 '설(雪)'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같은 해 '잃어버린 정'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87
['남행열차' 국민가요 등극]
기존의 서정적인 곡들과 달리 빠른 템포의 트로트곡 '남행열차'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곡은 대학 응원가, 야유회 필수 노래로 자리 잡으며 '국민 가요'로 불렸고, 김수희는 '여자 조용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1991
['애모' 역주행 시작]
팝 발라드 곡 '애모'를 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년 후 역주행하며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을 제치고 KBS 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3
['애모'로 대상 수상]
1991년 발표했던 '애모'가 2년 후 갑작스러운 대중의 요청으로 역주행하며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KBS 가요대축제 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 대상을 휩쓸며 한국 가요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곡은 1993년 8월 13일 MBC '결정최고인기가요' 1위를 시작으로 11월 7일 SBS '스타 서울 스타' 1위까지 총 14회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94
[영화 감독 & 제작자 변신]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감독까지 맡으며 영화계에 진출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동시에 희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음반 제작자로도 활동하며 편승엽을 발굴, 스타덤에 오르게 하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펼쳤습니다.
2020
[트롯 100년 가왕상 수상]
트롯 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트롯어워즈'에서 '트롯 100년 가왕상'을 수상하며 오랜 활동의 가치를 빛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