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록 밴드, 음악 그룹, 형제 그룹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46:23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로 구성된 대한민국 대표 록 밴드. 1977년 결성 후 31년간 한국 록 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 사이키델릭 아트록 등 다양한 록 장르뿐만 아니라 동요까지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임. 2008년 막내 김창익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공식 해체되었으나 한국 대중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그룹으로 평가받음.
- 삼형제의 음악 시작
- 산울림 음악의 탄생
- 무이, 대학가요제 1위
- 1집 '새노래 모음' 제작
- 1집 '새노래 모음' 돌풍
-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빨간 풍선' 대히트
- 실험적 3집 발표
- 동요 1집 '개구장이'
- 두 동생 군입대, 4·5집 발매
- 김창완 홀로 6집 발표
- 삼형제 재결합, 7집 대성공
- 8집 '회상' 히트
- 록적 9집 외면, 활동 중단
- 10집 '너의 의미' 히트
- 11집 '슬픈 장난감' 발표
- 12집 'Adajio' 참혹한 실패
- 재결합, 13집 발표
- 30주년 공연, 14집 준비
- 막내 김창익 사망, 해체
- 산울림 전집 'The Story' 발매
-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1970
[삼형제의 음악 시작]
서울대, 고려대 등 명문대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삼형제가 맏형 김창완이 대학생이 된 1970년대 초반, 함께 록 음악에 빠져들어 밴드 연주를 시작했다.
이는 훗날 대한민국 음악사를 뒤흔들 산울림의 시작점이었다.
1973
[산울림 음악의 탄생]
맏형 김창완이 500원짜리 어쿠스틱 기타를 사들고 오면서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둘째 김창훈은 피아노 대신 드럼을 요구하며 삼형제의 밴드 연주가 본격화되었고, 이 시기에 이미 수많은 곡을 만들어 훗날 앨범 발표의 기반을 다졌다.
1977
[무이, 대학가요제 1위]
김창완 형제는 '무이(無異)'라는 이름으로 MBC 대학가요제 예선에 참가해 '문좀 열어줘'로 1위를 차지했다.
맏형 김창완이 이미 졸업한 상태였기 때문에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이 대회 대상곡인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둘째 김창훈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산울림 2집에 리메이크되어 실렸다.
[1집 '새노래 모음' 제작]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작곡한 150여 곡이 아까워 앨범 제작을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레코드 회사에서 녹음을 허락했고, 녹음 당일 취직시험이 있었음에도 김창완은 과감히 녹음을 택하는 열정을 보였다.
1978
[1집 '새노래 모음' 돌풍]
1977년 제작된 《산울림 새노래 모음》은 1978년 겨울 대한민국 가요계를 강타하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집의 정식 판매량만 40만 장으로, 이는 현재 기준 약 500만 장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였다.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1집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발표하며 당시로선 드물게 록의 진정성과 대중성을 모두 지닌 앨범이란 평을 받았다.
동명 타이틀곡 외 '노래 불러요', '둘이서', '나 어떡해'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며 산울림의 사이키델릭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빨간 풍선' 대히트]
라디오 주제가 '빨간 풍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옴니버스 앨범으로 발매되어 산울림이 확실한 인기 그룹으로 정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실험적 3집 발표]
김창훈의 위악적인 보컬과 거친 퍼즈 기타 톤이 강렬한 '내 마음', 한국 가요 역사상 전무후무한 18분짜리 싸이키델릭 곡인 '그대는 이미 나' 등이 수록된 실험성 높은 3집을 발표했지만, 대중은 그 시도를 외면했다.
1979
[동요 1집 '개구장이']
이전까지 자신들의 상업적인 모습을 반성하며 동요 1집 '개구장이'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크게 히트하여 '국민동요'로 자리매김하며 산울림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두 동생 군입대, 4·5집 발매]
둘째 김창훈과 막내 김창익이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산울림은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
이 기간 동안 맏형 김창완은 홀로 산울림의 드라마, 영화 음악 모음집인 4집과 동생들이 군 입대 중 녹음한 5집을 발표했으나, 이전과 같은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1980
[김창완 홀로 6집 발표]
김창완이 홀로 '고장난 우주선' 세션들과 함께 6집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선 한동안 한국에서 가장 긴 노래 제목이었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가 크게 히트하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1981
[삼형제 재결합, 7집 대성공]
군 복무를 마친 두 동생이 제대하며 삼형제가 다시 뭉쳐 7집 '가지마오'를 발표했다.
'가지마오', '먼 나라 이야기', '하얀 달', '끊이지 않는 소리' 등이 산울림 중기를 대표하는 히트곡이 되었고, 이 해 KBS 가요대상 중창부문을 수상하며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1982
[8집 '회상' 히트]
8집에 수록된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회상〉이 크게 히트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김창완은 이 앨범의 상업적인 성공을 '속 보이는 짓'이었다며 가장 싫어하는 앨범으로 꼽기도 했다.
1983
[록적 9집 외면, 활동 중단]
8집의 상업성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된 9집은 3집과 더불어 가장 록적인 앨범으로 평가받았으나, 시장은 이들의 음악적 시도를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둘째 김창훈과 막내 김창익은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직장에 취직하게 된다.
1984
[10집 '너의 의미' 히트]
김창완은 독집 '기타가 있는 수필'을 발표하고, 이어서 세션들과 함께 산울림 10집 '너의 의미'를 발표해 히트시켰다.
이 시기부터 김창완은 드라마 출연 및 음악 제작, 후배 가수 지원 등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6
[11집 '슬픈 장난감' 발표]
새로운 음악적 형식이 도입된 11집 '슬픈 장난감'을 발표했다.
앞면에는 발라드가, 뒷면에는 뉴웨이브와 디스코 사운드 곡들이 수록되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산울림의 끊임없는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1991
[12집 'Adajio' 참혹한 실패]
오랜만에 12집 'Adajio'를 발표했지만, 이전 산울림의 음악과는 완전히 이별한 포근한 분위기의 곡들로 채워져 라디오에서 거의 들을 수 없는 '참혹한 실패'를 경험했다.
1997
[재결합, 13집 발표]
빅쇼, 락 인더 코리아, 문막공연 등을 통해 형제들이 재결합하여 산울림 13집을 발표했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팬들에게 다시 한번 산울림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2006
[30주년 공연, 14집 준비]
산울림은 결성 3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가졌으며, 이후 새로운 정규 앨범인 14집을 준비하는 등 활발한 활동 재개를 예고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2008
[막내 김창익 사망, 해체]
14집을 준비하던 중, 형제 중 막내인 김창익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게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산울림은 사실상 31년간의 활동을 공식 해체하게 되었다.
[산울림 전집 'The Story' 발매]
산울림의 삼형제 중 맏형인 김창완이 산울림 시절 발매했던 1집부터 13집 정규 앨범과 동요 1집부터 4집까지 모든 음반을 엮어 산울림 전집 'The Story of Sanullim - Complete Studio Recordings'를 발매하며 밴드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2009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산울림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는 그들의 음악적 업적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미 있는 수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