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밴드)

음악 그룹, 헤비 메탈 밴드,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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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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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룹, 헤비 메탈 밴드,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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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결성된 대한민국 대표 헤비 메탈 밴드. - 1988년 명동 가요제 대상을 시작으로 정규 앨범 10장 싱글 3장을 발표하며 한국 록 음악계에 큰 획을 그음. -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과 최우수 록 싱글을 수상. - 온라인 소통에 적극적이며 코로나 시국에 팬들과 협연하는 로그인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공연 문화를 선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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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블랙홀 결성]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우주의 블랙홀처럼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로 대한민국 헤비 메탈 밴드 블랙홀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헤비 메탈 붐 속에서 무수한 밴드들이 탄생하던 시기였습니다.

블랙홀은 198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 전 3~4년간의 라이브 활동으로 탄탄한 팬층을 구축했습니다. 매 공연마다 자작곡을 선보이며 빅밴드로서의 실력을 다졌습니다.

1988

[명동 가요제 대상]

1988년 올림픽 행사 중 하나였던 '명동 가요제'에서 자작곡 '노을'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칠레 가요제'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으며, 전 부활 매니저 백강기에게서 첫 앨범 제작 제의를 받았습니다.

블랙홀이 정식 데뷔 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첫 정규 앨범 'Miracle' 탄생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9

[데뷔 앨범 [Miracle] 발매]

명동 가요제 대상 수상 후, 밴드의 첫 정규 앨범 [Miracle]이 발매되며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밴드는 대중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앨범 발매와 함께 '깊은 밤의 서정곡'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멤버들의 학업 및 군입대 문제로 활발한 활동은 어려웠으나, 라디오 출연 등으로 꾸준히 이름을 알렸습니다.

1990

[2집 [Survive] 발매]

2집 앨범 [Survive]를 발매하며 이전보다 더욱 스피디하고 정교한 메탈 밴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미국인 선교사 Darrin Muir와 베이시스트 김비오가 합류하여 앨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앨범 발매 기념 단독 공연 후 김비오의 일본 유학과 Darrin Muir의 비자 문제로 인해 두 멤버가 팀을 떠났습니다. 이후 박원조가 정식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고, 베이시스트 정병희, 드러머 김응윤이 새롭게 영입되어 주상균, 박원조, 정병희, 김응윤으로 구성된 라인업이 완성되며 블랙홀 전성기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94

[3집 [Black Hole] 발매]

대형 외국 직배사 EMI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3집 앨범 [Black Hole]을 출시했습니다.

앨범 발매 후에도 '전국 투어'를 지속하며 공연 기반을 넓혔으나, 정작 앨범 판매량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앨범 판매 부진으로 인해 팀 활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며, 기타리스트 박원조가 탈퇴했습니다. EMI는 다음 앨범에 '대중성 가미'를 요구했으나, 주상균은 오히려 한국적 메탈 사운드와 역사적 아픔을 노래하는 4집 앨범을 구상하게 됩니다.

1995

[4집 [Made In Korea] 발매]

대중성 요구를 거부하고 고대 한국사부터 현대사까지 역사의 아픔과 무분별한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4집 앨범 [Made In Korea]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발매 두 달 만에 영국 EMI 기준 '플래티넘 앨범'을 뛰어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수많은 대학생 매니아층이 형성되며 전국 각 대학의 초청 공연이 쇄도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박원조 탈퇴 후, MBC 대학가요제 출신 기타리스트 이원재가 팀에 합류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전국의 대학들 중에서 블랙홀이 공연을 해보지 않은 학교가 거의 없을 정도'의 기록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1996

[5집 [City Life Story] 발매]

도시의 이면과 아픔을 노래하며 대중과 소통하려는 의도를 담은 5집 앨범 [City Life Story]를 발매했습니다.

수록곡 '바람을 타고'는 오토바이 매니아들의 '필청곡'으로 등극했습니다.

이 시기 블랙홀은 연간 200회 이상의 라이브 공연을 달성하며 가요 차트 순위에 오르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함께했던 EMI 가요부 송선영 과장과 매니저 이관희 실장이 퇴사하며 EMI 가요부가 해체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1997

[베스트 앨범 발매]

EMI 가요부 해체 위기 속에서도 잔류를 결정하고 베스트 앨범 [Best of Best]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IMF 외환 위기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습니다.

베스트 앨범 발매 이후, 블랙홀은 EMI에 전속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기이한 전속' 밴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의 부각, 신종 장르 유행, 대외적 프로모션 부재 등이 겹쳐 점차 활동 영역이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1998

[6집 [The Way] 발매]

'험난해도 나의 길을 간다'는 비장한 메시지를 담은 6집 앨범 [The Way]를 발매했습니다.

희망보다는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가 느껴지는 곡들로 채워졌습니다.

EMI 가요부 해체 이후, 1999년까지 아무런 지원 없이 전국 각지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오로지 음악으로 팬들과 소통하려 노력했습니다. 앵콜 요청 시 본 공연만큼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부족한 프로모션을 채웠습니다.

2000

[7집 [Seven Signs] 발매]

2000년 인류 멸망 예언을 담은 7집 앨범 [Seven Signs]를 발매하며 '그래도 항상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10년간 몸담았던 EMI와 이별했습니다.

이후 블랙홀은 자체 레이블 'Metal.K'를 설립하고 음반 및 공연에 대한 독자적인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단체와 연합하여 '문화혁명' 투어를 시작, 공중파 3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을 벌여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IMF 불황과 음반 시장 침체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때 라이브 앨범 [Live of Live]와 서정곡 모음집 [깊은 밤의 서정곡]을 발매했습니다. 드러머 김응윤이 탈퇴하고 이관욱이 새로운 드러머로 합류하여 안정적인 사운드를 구축했습니다.

2005

[8집 [Hero] 발매]

주상균의 부친상이라는 개인적인 아픔 속에서도 동료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8집 앨범 [Hero]를 준비했습니다.

독일 메탈 밴드 'Rage'의 기타리스트 Victor Smolsk가 프로듀싱에 참여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앨범 제작 중 제작사 및 녹음 문제로 난항을 겪었으나, 모든 문제를 떠안으며 어렵게 위기를 넘겼습니다. 대전의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이인호의 도움으로 최종 마스터링 작업을 마무리하며 약 1년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앨범을 완성했습니다.

2006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앨범상'과 '최우수 록 싱글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록 음악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2개 부문 수상으로 밴드의 음악성과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07

[불멸의 이순신 OST]

KBS 1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OST에 수록된 싱글 'Children Of Heaven'을 발매하며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갔습니다.

인기 드라마 OST 참여는 밴드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더 많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

[싱글 [Living In 2008] 발매]

싱글 [Living In 2008]을 발매하며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9

[싱글 [Living In 2009] 발매]

싱글 [Living In 2009]를 발매하며 팬들과 소통했습니다.

2014

[앨범 [HOPE] 발매]

정규 앨범 [HOPE]를 발매하며 꾸준히 음악적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2019

[앨범 [Evolution] 발매]

정규 앨범 [Evolution]을 발매하며 밴드의 현재를 선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오랫동안 함께했던 베이시스트 정병희가 팀을 떠났습니다.

정병희는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약 30년간 블랙홀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했습니다.

2020

[김세호 합류 및 온라인]

오랫동안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정병희의 후임으로 김세호가 베이스 세션으로 합류했습니다.

주상균은 '세션이지만 정식 멤버나 다름없다'고 밝히며 팀에 대한 그의 기여를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 활동이 어려워지자, 밴드는 유튜브 공식 채널 '블랙홀TV'를 개설하고 온라인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매주 정규 방송과 비정규 방송 '깊은 밤의 신청곡'을 통해 팬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특히 팬들이 블랙홀 곡을 연주하고 녹화한 영상을 보내면 멤버들과 협연하는 새로운 개념의 온라인 콘서트 '로그인 프로젝트'를 시작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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