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밴드)

록 밴드, 헤비 메탈 밴드, 음악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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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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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밴드, 헤비 메탈 밴드, 음악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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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대한민국 3대 헤비메탈 밴드 중 하나로 1980년대 한국 록 음악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천재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카리스마 보컬 유현상을 중심으로 독보적인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국내 헤비메탈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2집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나 열악한 국내 환경과 대마초 사건으로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며 한국 록 역사의 부침을 함께 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음악성으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활동하며 록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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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백두산 초기 결성]

1970년대 후반부터 미8군 부대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유현상(보컬/기타), 김창식(베이스), 한춘근(드럼)을 주축으로 밴드 '백두산'이 처음 결성됩니다.

한국 헤비메탈의 전설이 될 시작점이었습니다.

1985

[천재 기타리스트 합류]

서라벌 레코드사 사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당시 '솔로몬'의 멤버였던 천재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백두산에 합류합니다.

그의 합류로 백두산은 비로소 강력한 라인업을 갖추며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게 됩니다.

백두산 멤버 중 김도균은 다른 멤버들이 30대일 때 유일하게 20대였습니다. 백두산은 미8군 무대 출신으로 가요계에서 활동한 마지막 세대에 속합니다. 1980년대 조용필 이후 가요계가 급팽창하면서 음악 재능이 있는 젊은이들이 미8군 대신 가요계로 직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86

[데뷔 앨범 발매]

백두산의 데뷔 앨범 《Too Fast! Too Loud! Too Heavy!》가 발매되며 국내 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말할걸' 등은 백두산의 음악적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1987

[록 음악계 침체와 해체]

2집 발매 직후 김태원의 대마초 구속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록씬 전체가 무차별 체포와 심의 탄압으로 초토화됩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음악이 국내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백두산 역시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해 해체하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으로 김도균은 영국 유학길에 오르고, 유현상은 백두산 프로덕션을 설립해 원조 아이돌 가수 이지연을 데뷔시키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지연의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회사마저 문을 닫게 됩니다. 유현상은 이후 최윤희와 결혼하며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지연과의 스캔들 소문, 김종서 방치 등 흥미로운 일화가 많았습니다.

[유현상-최윤희 결혼]

백두산 해체 후 유현상은 13살 연하의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선수와 결혼하며 세간의 뜨거운 화제가 됩니다.

당시 최윤희는 1982년 아시안 게임 3관왕, 1986년 아시안 게임 2관왕을 차지한 김연아급 인기의 국민 스타였기에, 유현상이 납치하여 강제 결혼했다는 악성 루머까지 돌 정도로 팬들의 충격과 열폭(열등감 폭발)은 대단했습니다.

이 결혼으로 인해 방송국 PD들이 백두산 음반을 집어 던지며 절대 틀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로 당시 대중의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한국 메탈 명반 탄생]

베이시스트가 김주현으로 교체되고 유현상이 샤우팅 창법을 선보인 2집 《King Of Rock'N Roll》이 발매됩니다.

이 앨범은 국내 헤비메탈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자 메탈명반으로 손꼽히며 백두산의 전성기를 알렸습니다.

일본의 유명 잡지 'BURRN!'에 소개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주목받았으나, 당시 영어 가사에 대한 탄압이 심해 'Main Character'를 제외한 모든 곡이 영어 가사였음에도 방송 출연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대중적 인기로 무려 500회가 넘는 순회공연을 가졌습니다.

1989

[김도균 '아시아나' 결성]

영국 유학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김도균은 《Rock In Korea》 참여 후, 임재범과 함께 슈퍼밴드 '아시아나'를 결성하며 다시 한번 록 음악계에 도전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2

[백두산 재결성 및 3집]

김도균은 베이시스트 김창식, 드러머 최경섭과 다시 백두산을 재결성하고 3집 《너를 기다리네》를 발매합니다.

김도균이 직접 리드 보컬을 맡은 이 앨범은 이전과는 다른 하드록 성향을 띠었으며 발라드 곡 '너를 기다리네'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앨범 발매 후 다시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불명예스러운 해체를 맞이합니다.

2006

[파워 백두산 결성]

베이시스트 김창식이 '파워 백두산'을 결성하고 《Salvage Violence》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하지만 오리지널 백두산 팬들은 이를 '백두산과 무관한 전혀 다른 밴드'로 인식했습니다.

파워 백두산의 앨범은 기존 백두산의 장르에서 완전히 벗어난 파워 메탈에 가까운 음악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2008

[원년 멤버 재결합]

20년 만에 원년 멤버로 백두산이 재결성된다는 뉴스가 보도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후 동두천 락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재결합 공연을 가졌습니다.

2009

[4집 '귀환' 발표]

재결성 후 4번째 정규 음반 《Return Of The King》을 발표하며 백두산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꾸준한 음악 활동을 통해 록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1

[5집 앨범 발매]

5번째 정규 음반 《Rush To The World》가 발매되었습니다.

2집처럼 두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영어 가사로 작사된 것이 특징입니다.

재결성 후에 드러머가 박찬으로, 베이시스트가 경호진으로 교체되며 새로운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경호진은 탈퇴하고 기존 멤버 김창식이 복귀하는 등 멤버 변동이 있었습니다.

2012

[싱글 앨범 발표]

싱글 앨범 '어느날 방황과 인생'을 발표하며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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