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밍
농구 선수, 스포츠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44:40
중국 농구의 상징이자 NBA를 뒤흔든 농구 황제. 229cm의 압도적인 신장과 부드러운 기술로 휴스턴 로키츠의 1순위 지명을 받아 NBA에 입성했습니다. 8번의 올스타 선정과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안타깝게 일찍 코트를 떠났습니다. 코트 밖에서는 중국과 미국 농구 팬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문화적 아이콘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농구 행정가로 변신하여 중국 농구 발전에 기여하는 그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회자됩니다.
- 농구 DNA를 타고난 탄생
- CBA 첫 우승 견인
- 아시아 대회 MVP 및 메달
- NBA 1순위 지명 (세계최초)
- 루키 최초 올스타 (세계최초)
- 올해의 루키 선정 (각종 수상)
- 샤킬 오닐과 첫 맞대결
- 2년 연속 올스타 & PO 진출
- '빅2' 맥그래디와 시너지
- 올스타 역대 최다 득표 (최대)
- 첫 심각한 부상 발생
- 왼발 뼈 골절로 시즌 아웃
- 오른쪽 무릎 골절 부상
- 올 NBA 세컨드 팀 선정
- 중국 선수 맞대결 (최대)
- 왼발 스트레스 골절 재발
- 베이징 올림픽 중국 기수
- 부상으로 한 시즌 결장
- 왼쪽 발목 골절, 사실상 은퇴 수순
- 8번째 NBA 올스타 선정
- 농구 코트와 작별, 현역 은퇴
-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 헌액
1980
[농구 DNA를 타고난 탄생]
전직 프로 농구 선수 부모님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난 야오밍은 장차 NBA를 호령할 거인의 잠재력을 품고 세상에 나옵니다.
1989
1993
[상하이 샤크스 주니어 입단]
13세의 어린 나이에 CBA 상하이 샤크스 주니어 팀에 입단하며 프로의 꿈을 키웁니다.
하루 10시간의 맹훈련으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1997
[상하이 샤크스 성인팀 데뷔]
주니어 팀에서 4년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17세에 상하이 샤크스 성인팀에 합류, 경기당 10득점 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1998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금]
[[1998년 FIBA 아시아 U-18 선수권 대회]]에서 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1999
[NBA 드래프트 도전 시작]
상하이 샤크스 부감독의 도움으로 NBA 드래프트 진출을 시도합니다.
에버그린 스포츠와 계약하며 NBA 진출의 문을 두드립니다.
[첫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1999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농구 최강자임을 입증합니다.
2001
[CBA 첫 우승 견인]
왕지지의 NBA 진출 후, 상하이 샤크스를 이끌고 팀의 첫 CBA 우승을 달성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당 38.9득점, 20.2리바운드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웁니다.
[아시아 대회 MVP 및 메달]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MVP와 금메달을 동시에 거머쥐며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등극합니다.
또한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동아시아 경기 대회 금메달을 추가합니다.
2002
['팀 야오' 결성]
NBA 드래프트 진출을 위해 에릭 장, 빌 더피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 야오'를 결성합니다.
그의 드래프트 성공을 위한 전담팀이 꾸려진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FIBA 세계 선수권 출전]
NBA 프리 시즌 훈련 캠프 대신 [[2002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 중국 대표로 출전하며 국가에 대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NBA 1순위 지명 (세계최초)]
[[2002년 NBA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로키츠에 아시아인 최초, 미국 대학 출신이 아닌 선수 최초로 전체 1순위로 지명됩니다.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습니다.
[NBA 공식 데뷔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NBA 공식 데뷔전을 치릅니다.
득점 없이 리바운드 2개를 기록하며 첫 발을 내딛습니다.
[레이커스전 완벽 20득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필드골 9/9, 자유투 2/2로 완벽한 20득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2003
[루키 최초 올스타 (세계최초)]
[[2003년 NBA 올스타전]]에 샤킬 오닐을 제치고 팬 투표 1위로 선발됩니다.
1995년 이후 첫 루키 올스타 선발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습니다.
[올해의 루키 선정 (각종 수상)]
NBA 올해의 루키 상 투표 2위를 기록하고, 스포팅 뉴스와 로리어스에서 '올해의 루키' 및 '새로운 선수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냅니다.
[샤킬 오닐과 첫 맞대결]
NBA 최강의 센터 샤킬 오닐과 첫 맞대결을 펼칩니다.
2번의 블록슛과 덩크슛을 성공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2004
[2년 연속 올스타 & PO 진출]
2년 연속 NBA 올스타에 선정되며 스타 플레이어로서 입지를 굳힙니다.
휴스턴 로키츠를 이끌고 팀의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리바운드왕에 오릅니다.
['빅2' 맥그래디와 시너지]
올랜도 매직에서 슈퍼스타 트레이시 맥그래디를 영입하며 휴스턴 로키츠는 야오밍과 함께 강력한 '원투펀치'를 형성, 우승을 향한 기대를 높입니다.
[개인 최다 득점 41점]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최다 득점인 41점과 함께 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합니다.
2005
[올스타 역대 최다 득표 (최대)]
[[2005년 NBA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총 2,558,278표를 얻어 마이클 조던의 기록을 깨고 역대 최다 득표를 달성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증명합니다.
[첫 심각한 부상 발생]
왼발 엄지 발가락 골수염으로 수술을 받으며 데뷔 후 가장 긴 회복 기간을 가집니다.
부상이 잦아지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2006
[왼발 뼈 골절로 시즌 아웃]
유타 재즈와의 경기 도중 왼발 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남은 시즌을 포기하고 6개월간의 긴 재활에 들어갑니다.
[오른쪽 무릎 골절 부상]
슛을 막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어 시즌 아웃됩니다.
MVP 후보로 거론될 만큼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시점에 찾아온 불운이었습니다.
2007
[올 NBA 세컨드 팀 선정]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생애 처음으로 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며 리그 정상급 센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중국 선수 맞대결 (최대)]
NBA 최초로 중국인 선수 간의 맞대결이 펼쳐진 날, 밀워키 벅스의 이잔랸과 맞붙습니다.
이 경기는 중국에서 2억 명 이상이 시청하며 역대 NBA 최다 시청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2008
[왼발 스트레스 골절 재발]
왼쪽 발에 스트레스 골절 진단을 받으며 또다시 시즌 아웃됩니다.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로키츠는 NBA 역사상 두 번째로 긴 22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이어갑니다.
[베이징 올림픽 중국 기수]
고국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린하오와 함께 중국 선수단의 기수를 맡아 전 세계에 위풍당당한 모습을 선보입니다.
2009
[부상으로 한 시즌 결장]
발 부상이 심화되어 의사와 논의 끝에 2009-10 NBA 시즌 전체를 결장하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부상 재앙은 계속됩니다.
2010
[왼쪽 발목 골절, 사실상 은퇴 수순]
왼쪽 발목에 또다시 스트레스 골절이 발생하며 남은 시즌을 뛸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사실상 그의 NBA 선수 생활 마지막 부상이 됩니다.
2011
[8번째 NBA 올스타 선정]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9시즌 중 8번째로 NBA 올스타에 선정되며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습니다.
[농구 코트와 작별, 현역 은퇴]
상하이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의 은퇴 소식은 시나 웨이보에서 1천 2백만 개 이상의 소감이 전달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NBA 위원 데이비드 스턴은 그를 "중국인과 미국인 팬들 사이의 다리"이자 "재능, 기부, 인도주의, 유머 감각의 멋진 혼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은퇴는 농구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16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 헌액]
농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됩니다.
이로써 그는 농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선수로 자리매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