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로 나미에
가수, 팝 아티스트, 아이돌, 디바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7:10:57
• 일본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헤이세이 시대의 디바. • 10대 아이돌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로 독보적인 변신 성공. • 음악적 재창조와 끝없는 도전으로 26년간 최정상 유지. • 여성 솔로 역대 최다 판매 싱글 전 세대 밀리언셀러 앨범 등 기록의 여왕. • 화려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2018년 전격 은퇴 팬들에게 영원한 아이콘으로 남음.
- 일본 팝 여왕 탄생
- '슈퍼 몽키스' 데뷔
- 'TRY ME' 대히트
- 에이벡스 이적 및 솔로 데뷔
- 'Chase the Chance' 첫 밀리언셀러
- 'SWEET 19 BLUES' 앨범 대성공
- 日레코드 대상 최연소 그랑프리 수상
- 'CAN YOU CELEBRATE?' 日 여성 솔로 역대 최다 판매
- 음반 판매 2천만 장 돌파
- TRF 샘과 결혼 및 임신 발표
- 어머니 피살 사건
- 남편 샘과 이혼
- '스위트 시크' 프로젝트 참여 (R&B 전환)
- MTV VMAJ 최초 4년 연속 수상
- 'Baby Don't Cry'로 재도약
- 'BEST FICTION' 컴백 확고
- 'Finally' 4세대 밀리언셀러 달성
- '헤이세이 디바' 전격 은퇴
1977
[일본 팝 여왕 탄생]
오키나와현 나하시에서 4분의 1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소녀, 아무로 나미에가 태어났다.
그녀는 훗날 일본 음악계를 뒤흔들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다.
1991
[슈퍼 몽키스 합류]
오키나와 액터스 스쿨에 스카우트되어 입학한 아무로는 '슈퍼 몽키스'라는 아이돌 그룹에 합류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992
['슈퍼 몽키스' 데뷔]
14세의 나이로 아이돌 그룹 '슈퍼 몽키스'의 리드 싱어로 공식 데뷔, 싱글 "Koi no Cute Beat/Mr USA"를 발매하며 가요계 첫발을 내딛었다.
1994
[그룹명 '아무로 나미에 with 슈퍼 몽키스' 변경]
배우 겸 모델로 아무로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룹은 '아무로 나미에 with 슈퍼 몽키스'로 이름을 변경하며 그녀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1995
['TRY ME' 대히트]
유로비트 싱글 'TRY ME (Watashi o Shinjite)'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아무로의 인기에 불을 지폈고, 그녀의 솔로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에이벡스 이적 및 솔로 데뷔]
에이벡스 트랙스와 계약을 맺고 솔로 아티스트로 전격 변신, 첫 싱글 'Taiyō no Season'을 발매하며 새로운 음악적 행보를 시작했다.
['Chase the Chance' 첫 밀리언셀러]
유명 프로듀서 코무로 테츠야와 손잡고 발매한 솔로 싱글 'Chase the Chance'가 대성공을 거두며 그녀의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1996
['SWEET 19 BLUES' 앨범 대성공]
첫 솔로 정규 앨범 'SWEET 19 BLUES'가 36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기록, 10대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日레코드 대상 최연소 그랑프리 수상]
'Don't wanna cry'로 일본 레코드 대상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이 상을 수상한 역사상 가장 어린 아티스트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1997
['CAN YOU CELEBRATE?' 日 여성 솔로 역대 최다 판매]
싱글 'CAN YOU CELEBRATE?'가 275만 장 이상 팔리며 일본 여성 솔로 아티스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되는 전례 없는 대기록을 세웠다.
[음반 판매 2천만 장 돌파]
데뷔 5년 만에 총 음반 판매량이 2천만 장을 돌파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명실상부 일본 최고 여가수의 위엄을 입증했다.
[TRF 샘과 결혼 및 임신 발표]
인기 밴드 TRF의 멤버 마루야마 마사하루(SAM)와의 결혼과 임신 3개월 사실을 동시에 발표, 일본 열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1999
[어머니 피살 사건]
새 싱글 발매일, 고향 오키나와에서 어머니가 비극적으로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오키나와로 급히 향했다.
2002
[남편 샘과 이혼]
남편 마루야마 마사하루(SAM)와 이혼하고 법적으로 다시 '아무로 나미에'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중의 관심이 사생활에 집중되며 판매량 하락에 영향을 주었다.
['스위트 시크' 프로젝트 참여 (R&B 전환)]
일본 아티스트들과 함께 '스위트 시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음악적 스타일을 팝에서 R&B로 전환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는 그녀의 음악적 재창조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2005
[MTV VMAJ 최초 4년 연속 수상]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재팬에서 '최우수 R&B 비디오상'과 '아시아 최우수 퍼포밍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며, 이 시상식에서 최초로 4년 연속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7
['Baby Don't Cry'로 재도약]
싱글 'Baby Don't Cry'를 발매, 오리콘 싱글 차트 3위를 기록하며 2000년대 중반 판매량 부진을 딛고 상업적 재도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08
['BEST FICTION' 컴백 확고]
싱글 '60s 70s 80s'와 베스트 앨범 'BEST FICTION'이 연달아 큰 성공을 거두며 '팝의 여왕'으로서의 컴백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2012
[10집 'Uncontrolled' EDM 실험]
10번째 정규 앨범 'Uncontrolled'를 통해 EDM 사운드에 도전하고 영어로 녹음하는 등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으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2017
['Finally' 4세대 밀리언셀러 달성]
베스트 앨범 'Finally'를 발매하며 10대, 20대, 30대, 40대 전 세대에 걸쳐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2018
['헤이세이 디바' 전격 은퇴]
일본 가요계의 아이콘 '헤이세이 디바' 아무로 나미에가 공식적으로 은퇴하며 26년간의 화려했던 음악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