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 정치, 대한민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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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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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정치, 대한민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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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이후 대한민국 제2공화국의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치러진 선거. 헌정 사상 최초로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제를 동시에 시행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으나 직후 신구파 간 내분이 격화되어 분당으로 이어졌다. 어렵게 구성된 장면 내각은 불과 9개월 만에 5.16 군사정변으로 해산되며 단명 국회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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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4.19 혁명, 새 시대의 서막]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4·19 혁명 후, 대한민국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제2공화국 헌법을 공포하며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전 이승만 정부 시절 내내 양원제 도입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의 거부로 실제 참의원 선거는 단 한 번도 실시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 양원제 선거]

대한민국 제2공화국의 탄생을 알리는 민의원의원(하원)과 참의원의원(상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습니다.

특히 참의원 선거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양원제를 구성하는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민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참의원은 2~8명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와 제한 연기명 투표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선거인 등재율은 전체 인구의 53.9%로 선거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총 투표율은 84.3%로 제1공화국 시절처럼 관권에 의한 강제적인 투표 동원이 없어 비교적 낮은 편이었습니다.

[민주당 대승과 치열한 내분]

선거 결과 민주당은 민의원 전체 의석의 3/4과 참의원 과반수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당내 신구파의 치열한 당권 다툼이 시작되었고, 몇 개월 뒤 구파는 결국 신민당을 창당하며 민주당은 분열되었습니다.

자유당은 민의원 2석, 참의원 4석에 그쳐 몰락했습니다. 4.19 혁명 후 부상할 것으로 기대되던 한국사회당, 사회대중당 등 혁신 정당들도 사실상 전멸하며 당시 국민들의 이념적 성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선출]

양원 합동 회의에서 윤보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두 차례의 총리 인준 표결 끝에 장면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국무총리로 인준되어 대한민국 제2공화국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이 먼저 구파의 김도연 박사를 총리로 지명했으나, 신파와 무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되었습니다. 이후 장면 총리가 조각을 완료했으나 대부분 신파 인사가 기용되자 구파는 '구파동지회'를 결성하며 반발했고, 결국 9월 12일 일부 장관직에 구파 인사가 임명되는 개각이 단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향후 장면 내각의 순탄치 않은 임기를 예고했습니다.

1961

[단명한 양원제 국회 해산]

대한민국 국회 사상 처음으로 양원제를 구성했던 제5대 민의원과 초대 참의원은 불과 9개월여 만에 5·16 군사 정변으로 인해 해산되며 단명한 국회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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