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 정치, 현대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43
2012년 4월 11일 실시된 제1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는: - 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 등 총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습니다. - 재외국민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최초의 선거입니다. - 집권 마지막 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8개월 뒤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지녔습니다. -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승리하는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2011
[여당의 대대적 재정비]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지도부가 사퇴하고, 박근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됩니다.
당명은 '새누리당'으로 바뀌고 강령과 정책 방향도 전면 수정되며, 19대 총선을 위한 공천 심사를 진행합니다.
위기에 처했던 여당이 새로운 이름과 인물로 환골탈태를 시도하며 재도약을 준비합니다.
2012
[야권연대 본격화]
민주통합당은 시민통합당과의 합당 절차를 마무리하고 한명숙 전 총리를 당대표로 선출하며 거대 야당으로 거듭납니다.
동시에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정책 합의와 여론 조사 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로 총선 연대를 결의하며, 여당에 맞설 강력한 야권연대를 구축합니다.
[새로운 '한나라당' 등장]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변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소 정당인 영남신당자유평화당이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꾸면서 이색적인 논란이 발생합니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면서도 정치적 흥미를 유발하는, 선거판의 숨겨진 에피소드로 기록됩니다.
새누리당은 옛 한나라당의 이름을 계승한다고 표방한 군소정당에 반발했지만,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19대 총선 실시]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어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합니다.
특히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의 재외국민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세계 최초의 선거로, 투표율 54.2%를 기록하며 높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세종특별자치시장 및 교육감 선거 등도 함께 치러집니다.
이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평가이자, 8개월 뒤에 치러질 18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지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습니다.
[새누리당, 과반 확보]
예상과 달리 새누리당이 152석을 확보하며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대이변을 연출합니다.
민주통합당은 127석에 그쳤고,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무소속 3석을 얻었습니다.
당초 여론조사와는 달리 보수층이 강력하게 결집한 결과로 분석되며, 대선 정국에 큰 변수로 작용합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남과 강원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체 과반을 확보했습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수도권에서 승리했음에도 영남 및 강원 지역의 부진으로 과반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약진했으나, 자유선진당은 제3당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여야가 어느 한쪽도 독주할 수 없는 절묘한 힘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총선 관련 논란 발생]
총선 당일 서울 강남을 투표함 봉인 문제, 부경대 학생회장의 부재자 투표용지 폐기 논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그리고 일부 정당 후보들의 투표장 앞 선거운동 등 크고 작은 논란들이 선거 과정에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들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남겼습니다.
[여당, 과반 의석 붕괴]
총선 후 김형태 의원(4월 18일)과 문대성 의원(4월 20일)이 각각 논란 끝에 새누리당을 탈당합니다.
이로 인해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150석으로 줄어들어, 19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가까스로 확보했던 과반 의석이 깨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19대 국회 공식 개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19대 국회의원들이 공식적으로 4년 임기를 시작하며, 새로운 국회의 막이 오릅니다.
이 선거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같은 해에 치르는 해의 첫 정치적 빅 이벤트였으며, 향후 대선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