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거세 거서간
신라, 초대 군주, 창업군주, 박씨 시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39
신라의 시조이자 초대 군주.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적 인물. 박씨의 시조이자 영웅적인 왕. 초기 신라의 기틀을 다지고 덕치로 백성을 다스림.
BC 1C
[신비로운 탄생]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 속 인물입니다.
박처럼 큰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은 박(朴),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라 지어졌습니다.
한국 신화에 기록된 신비로운 탄생 중 하나로 전해집니다.
여섯 촌장들이 임금을 세우려 의논하던 중, 양산 기슭 나정 우물 곁에서 백마가 알을 낳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자줏빛 큰 알에서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고, 몸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일연은 천자의 딸 사소부인에게서 출생했다는 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신라 건국과 즉위]
13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신라를 건국하고, 알영부인을 왕후로 삼았습니다.
나라 이름은 서라벌, 서벌, 사라, 사로, 계림 등 다양하게 불리다 훗날 '신라'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한반도 남동부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촌장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혁거세와 알영부인을 길렀습니다. 오봉 원년 갑자년에 혁거세는 왕이 되고 알영부인을 왕후로 삼았습니다. 국호는 서라벌, 서벌, 사라, 사로 등으로 불렸고, 계림국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후세에 신라로 정해졌습니다.
[왜구, 덕치에 물러나다]
왜인들이 신라 변경을 침략했으나, 혁거세가 지닌 신령스러운 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싸움 없이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이는 혁거세의 통치력이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백성을 위한 순방]
왕비 알영부인과 함께 6부를 두루 순방하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농사와 양잠업을 장려하여 백성들이 땅의 이로움을 최대한 얻도록 독려했습니다.
이는 백성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혁거세의 덕치 일환이었습니다.
[변한의 항복 (논란)]
변한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역사가 신채호는 초기 신라의 작은 규모를 고려할 때 이 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신채호는 당시 신라가 경주 한 구석에 의거한 가장 작은 나라였으므로, '변한의 항복'이나 '동옥저의 말 헌상' 등은 사세에 맞지 않거나 황당한 기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수도 금성 성벽 축조]
수도 금성(현 경주시)에 성을 쌓아 외부 침략에 대비하고, 국가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다졌습니다.
이는 신라의 안정과 방어를 위한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궁실 건축, 국가 기틀 완성]
수도 금성에 궁궐을 지어 국가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신라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이로써 국가 체제가 더욱 안정화되었습니다.
[낙랑, 덕치에 감탄해 퇴각]
낙랑이 신라를 침범했으나, 백성들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곡식을 들판에 쌓아두는 모습을 보고 '도덕의 나라'라며 감탄하여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이는 혁거세의 덕치가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한과의 현명한 관계]
마한에 사신 호공을 보냈을 때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협받았으나, 호공의 당당함과 이후 마한 왕의 죽음에 조문 사신을 보내는 등 어진 태도로 신라의 독립적인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마한 왕이 조공을 탓하며 호공을 죽이려 했으나 신하들이 만류하여 놓아주었습니다. 이듬해 마한 왕이 죽자 신하들은 정벌을 권했으나 혁거세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요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며 사신을 보내 조문했습니다. 이는 당시 신라의 정치 체제가 마한에 예속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동옥저의 말 헌상 (논란)]
동옥저 사신이 말 20필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역시 역사가 신채호는 초기 신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황당한 내용으로 보아 신뢰하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신채호는 이 기록을 초기 신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황당한 내용으로 보았다.
3
[금성의 기이한 현상]
금성 우물에서 용 두 마리가 나타나고 천둥과 비가 쏟아지며 성의 남쪽 문에 벼락이 치는 기이한 자연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기록에 남을 만큼 특이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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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과 오릉의 탄생]
재위 62년 만에 하늘로 승천했다가 7일 후 시신이 부위별로 나뉘어 지상으로 떨어졌습니다.
백성들이 시신을 합치려 했으나 뱀의 방해로 실패, 결국 몸을 나눈 채 다섯 곳에 묻어 오릉(五陵)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혁거세의 신비로운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화입니다.
백성들이 시신을 다시 하나로 모아 장사 지내려 했으나 커다란 뱀이 나타나 방해했습니다. 결국 양다리, 양팔, 몸통, 얼굴을 따로 묻어 5개의 무덤, 즉 오릉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뱀 때문에 사릉(巳陵)이라고도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