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민족 시조, 고조선 건국자, 신화적 인물, 종교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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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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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시조, 고조선 건국자, 신화적 인물, 종교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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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신화적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 한국사에서 시조로 추앙되며 대종교에서는 신앙 대상이다. 주류 학계는 신화적 인물로 보나 북한과 일부 학계는 실존 인물로 본다. 남한에서는 제정일치 지도자로 북한에서는 고조선 첫 왕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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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단군, 민족의 구심점 되다]

고려 말 대몽항쟁 시기에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단군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국조로 추앙되며 국가적 제사가 이루어졌다.

1400

[국가적 단군 제사 시작]

조선 세종 때 평양에 단군과 동명왕을 모시는 사당이 세워져 국가적으로 단군에 대한 제사가 올려지기 시작했다.

환인, 환웅, 단군의 신주를 모신 삼성당이 황해도 구월산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1800

[민족 정신의 구심점 부각]

구한말, 외세의 침탈에 맞서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단군이 대폭 강조되며 대종교 같은 종교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로 큰 역할을 했으나, 일선동조론 등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악용되기도 했다.

1945

[남한 학계의 단군 인식 변화]

광복 이후 남한 학계에서는 단군에 대한 연구가 고조선 사회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

단군왕검은 대제사장과 군주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제정일치의 지도자로 해석된다.

1994

[북한, 단군 실존 주장 및 능 발굴]

북한은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단군 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며 단군이 실존 인물이라고 입장을 변경했다.

단군의 출생·건국·무덤이 모두 평양에 있다고 주장하며, 남한 학계는 이를 정치적 요인으로 해석한다.

2007

[고조선 교과서 서술 변경 지침]

청동기 시대 연대 발굴 결과에 맞춰 국사교과서의 고조선 관련 부분 서술 지침이 변경되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단군·고조선을 신화에서 역사로 수정"한다고 보도하여 오해를 불러일으켰으나, 학계는 사실이 아니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2333

[고조선 건국]

한민족의 신화적 시조이자 고조선의 창건자로 전해지는 단군왕검이 아사달 또는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그는 1000여 년간 고조선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며, 이후 산신이 되었다.

단군이 1000여 년간 나라를 다스렸다는 기록은 현실성이 없어 조선시대부터 한 사람이 아닌 고조선 누대에 걸친 국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한국의 주요 역사서에 한민족의 시조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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