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예술, 문화, 서예,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36
- 서예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로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 등 동양 문화권으로 전파되었습니다. - 단순히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넘어 정신 수양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며 서도라고도 불립니다. - 선의 예술이자 마음을 담는 그림으로 각 시대와 인물에 따라 다양한 서체와 기법으로 발전해 온 동양 예술의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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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서예의 시작과 특징]
고려시대 서예는 구양순의 구법을 주류로 삼아 발전했으며, 비문과 사경에 사용되는 정제된 서체와 함께 판각에서는 독특한 고려체를 형성했다. 말기에는 당사경체와 원나라 조맹부체의 영향도 받았다.
고려시대 서예는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구양순의 구법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규각이 있으면서 정제되고 준경한 서체였다. 이러한 서체는 비문과 사경에 사용되었고, 판각에서는 변화된 독특한 고려체를 이루었다. 고려 말기에는 당나라 사경체의 여운을 가진 예도 있었고, 후에 조선시대 서체의 기반이 되는 원나라 조맹부체도 등장했다.
1392
[조선 서예의 조맹부체 유입 및 유행 시작]
조선시대 서체는 고려시대와 달리 왕희지에서 비롯된 원나라 조맹부의 서체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서체는 명나라 초기 문인들 사이에서 한림원체로 불리며 유행했고,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의 서체는 안진경체가 주류였던 고려와는 달리, 왕희지에서 출발하는 원나라 말기의 조맹부 서체로 시종하였다. 조맹부의 세련된 서체는 명나라 초기의 문인 학자들 사이에 유행하여 한림원체라 불리며 판본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조선에도 자극을 주어 새로운 서예 경향의 시작을 알렸다.
1418
[안평대군 이용의 탄생 및 활약]
조선 초기의 대표적 서예가 안평대군 이용이 태어났다. 그는 조맹부의 서법을 뛰어넘어 연미하고 넉넉한 품격의 글씨를 선보여 당대에 따를 이가 없다고 평가받았으며, 그의 서풍은 전국에 성행하게 되었다. 훈민정음 혜례본 서체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안평대군 이용(1418년~1453년)은 조선 초기의 서예를 대표하는 인물로, 조맹부의 조법을 잘 체득하여 연미하고 넉넉한 품격의 서풍을 선보였다. 당대에 그를 따를 이가 없어 조정에서도 높이 평가했으며, 그의 서체는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특히 훈민정음 혜례본의 서체가 그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1443
[훈민정음 창제와 조선 서적의 서체 확립]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이 창제되었고, 이후 훈민정음과 삼강행실도 등의 서적이 명나라 초기의 서체와 사경에서 느껴지는 힘 있는 서체로 간행되었다. 이는 조선 서예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훈민정음, 삼강행실도 등의 서적이 명나라 초기의 서체와 사경에서 느낄 수 있듯이 힘이 들어 있는 서체로 간행되었다. 이는 조선 서예의 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1543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한호(1543년~1605년)가 태어났다. 그는 진체의 대가로서 뛰어난 서예가였다.
1735
조선 후기의 한글 서예가 헌경왕후 홍씨(1735년~1815년)가 태어났다. 그녀는 '한중록'을 썼다.
[청나라 서예 고전주의와 첩학의 성립]
청나라 건륭, 가경 시대에 고전주의 서예가 성립되고 첩학이 개화했다. 유용, 양동서 등이 법첩을 본으로 삼아 첩학파를 형성하며 서예 발전에 기여했다.
청나라에 들어서면서 진첩이나 당비의 연구가 활발해졌고, 건륭(1735~1796)·가경(1796~1820) 시대가 되자 교묘한 구조와 풍부한 정신을 가진 고전주의가 성립되었다. 이른바 첩학의 개화로 유용, 양동서, 왕문치, 성친왕 등은 법첩을 본으로 삼은 첩학파의 주요 인물이었다.
[청나라 비학의 대두와 전서·예서 발전]
청나라에서는 금석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비의 탁본을 배워야 한다는 비학이 발생했다. 등석여, 이병수 등이 비학파를 형성하여 전서와 예서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세웠다.
한편 금석학의 연구가 진전되자 종래의 첩학과 같이 여러 번 번각을 거듭한 법첩보다도 진적에 가까운 비의 탁본을 배워야 한다는 비학이 생겼다. 등석여, 이병수, 진홍수, 오양지, 조지겸 등이 비학파에 속하는 사람으로, 그들은 진한의 고비를 연구하여 전서·예서에 새로운 업적을 세웠다.
1786
[김정희의 탄생 및 추사체 창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김정희가 태어났다. 그는 독창적인 '추사체'를 창시하여 조선 서예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김정희(1786년~1856년)가 태어나 독창적인 서체인 '추사체'를 등장시켜 조선 서예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추사체는 더 발전이나 계승을 보지 못하고 그 한 사람대(代)로서 끝났다.
1856
이완용(1856년~1926년)이 태어났다. 그는 독립문 현판 등 유명 작품을 남겼다.
1879
[안중근의 탄생 및 유묵 활동]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인 안중근이 태어났다. 그는 독립 운동 중에도 200여 점의 유묵을 남겼으며, 그중 20점은 보물 569호로 지정되었다.
안중근(1879년~1910년) 의사가 태어났다. 그는 독립 운동 중에도 200여 개의 유묵을 남겨 그중 20개가 보물 569호로 지정될 정도로 뛰어난 서예 실력을 보였다.
1897
[구한말 서예의 청나라 서풍 유입과 혼재]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개칭한 구한말, 청나라의 영향으로 고증학, 금석학에서 유래한 서풍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동시에 재래 서풍을 답습하는 경향도 나타나며,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옹방강 등의 서풍과 송·명의 서풍, 구양순·안진경 학습 경향이 혼재했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개칭한 후, 시기적으로 보아 청나라의 영향력이 컸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와의 빈번한 교류로 중국에서 유행했던 고증학이나 금석학에서 유래된 서풍을 받아들여 이것을 주류로 삼았으며, 한편 재래의 서를 답습하는 경향도 보였다. 옹동화와 오대징 등의 내한을 계기로 청나라 서풍이 표면화되었으며,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옹방강, 성친왕, 철보, 하소기 등의 서풍, 그리고 동기창, 미불, 소식 등의 송·명의 서풍과 구양순, 안진경을 배우는 경향도 나타났다. 특히 안법의 유행은 청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한말 서예의 한 경향이었다. 재래 서풍을 답습하는 것은 주로 지방을 중심으로 한 현상으로, 노론은 추사체와 청의 서풍에 관심을 두었고 소론 측에서는 주로 신위의 체를 숭상하여 신위가 시서화 삼절로 송의 소식과 통한다 하여 소체를 숭상하기도 했다.
1903
소전 손재형(1903년~1981년)이 태어났다. 그는 한글 서법을 전획 필법으로 전개시켜 놓은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08
청남 오제봉(1908년~1991년)이 태어났다. 그는 해인사에 승문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글을 익힌 유명 서예인이다.
1909
[원곡 김기승의 탄생 및 원곡체 창조]
독특한 '원곡체'를 창조하고 한국 서예사를 저술한 원곡 김기승이 태어났다. 그는 원곡서예상도 제정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원곡 김기승(1909년~2000년)이 태어났다. 그는 원곡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창조하였고, 한국서예사를 저술하고, 원곡서예상을 제정하였다.
1911
[검여 유희강의 탄생]
육서에 능통했으나 고혈압으로 오른손 마비 후 왼손으로 서예에 정진하여 독특한 경지를 이룬 검여 유희강이 태어났다.
검여 유희강(1911년~1976년)이 태어났다. 그는 육서에 모두 능통하였다. 고혈압으로 오른손에 마비가 왔지만 집념으로 왼팔로 서예에 정진해 독특한 경지를 이뤘다.
1914
어천 최중길(1914년~1979년)이 태어났다. 그는 초서법에 있어서 탁월한 작가로 꼽히며, 전각목각 또한 능하다.
1917
시암 배길기(1917년~1999년)가 태어났다. 그는 전서, 그중에서도 소전에 매우 능한 작가다.
1921
철농 이기우(1921년~1993년)가 태어났다. 그는 근대 최고의 전각가로 꼽히며 역대 대통령들의 사인(도장)을 각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