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종이, 전통 공예, 무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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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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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전통 공예, 무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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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한국 고유의 전통 종이로 닥나무 등 천연 섬유로 만들어져 뛰어난 품질과 놀라운 보존성을 자랑합니다. 종이는 천 년을 간다는 말이 증명하듯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수많은 유물을 통해 그 우수성이 입증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고려지로 불리며 중국에서도 극찬받았고 현대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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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묘지에서 고대 한지 조각 발견]

고대 한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물로, 기원전 108년경부터 313년경까지 존속했던 낙랑군의 묘지에서 한지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108년경부터 기원후 313년경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낙랑군의 묘지에서 한지 조각이 발굴되어, 이 시기에도 한지가 제작되고 사용되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 발견은 한국 제지 역사의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가 됩니다.

1

[중국 제지술 한국 전래 및 한지 정착 추정]

한지의 정확한 발명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중국 채륜의 제지술이 삼국시대에 한국으로 전래되어 개량되고 정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지의 정확한 발명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채륜의 우수한 제지술이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전래된 후 한국의 환경과 기술에 맞춰 개량되고 정착되면서 한지의 기틀이 마련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합니다. 이는 한국 종이 문화의 중요한 시작점이 됩니다.

593

[고구려에 제지법 전래]

고구려에 제지법이 전해졌습니다. 이는 한국 제지술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593년, 고구려에 새로운 제지법이 전해지면서 종이 생산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고구려는 자체적인 종이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문화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610

[담징, 일본에 제지법 전파]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제묵법(먹 만드는 법)과 제지법(종이 만드는 법)을 전파하여, 일본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610년, 고구려의 저명한 승려 담징이 일본으로 건너가 제묵법(먹 제조 기술)과 제지법(종이 제조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종이 및 인쇄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고구려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704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제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중 하나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한지의 우수한 보존성과 한국의 뛰어난 인쇄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704년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중 하나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불경은 신라 시대에 한지에 인쇄되었으며, 1,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한지의 뛰어난 보존성과 내구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이는 한국 인쇄술의 발전상 또한 보여줍니다.

918

[고려지, 중국에서 극찬받으며 명성 확립]

고려시대부터 한지의 명성이 높아져 중국에서는 가장 좋은 종이를 '고려지'라 불렀으며, 송나라 문인 손목은 고려의 닥종이를 '빛이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럽다'고 극찬했습니다.

고려시대가 시작되면서 한지의 품질은 더욱 발전하여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졌습니다. 중국인들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종이 중 가장 우수한 것을 '고려지'라고 부르며 높이 평가했으며, 특히 송나라의 문인 손목은 자신의 저서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가 "빛이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하여, 당시 고려지의 국제적인 위상을 짐작케 합니다.

1236

[팔만대장경 제작, 한지의 우수성 입증]

고려 시대,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략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지의 뛰어난 내구성과 보존성이 활용되었습니다.

고려 고종 23년(1236년)부터 고종 38년(1251년)에 걸쳐 해인사에 보관된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이 제작되었습니다. 몽골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시작된 대규모 불사였으며, 이때 사용된 한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형태와 내용이 온전히 보존되어 한지의 뛰어난 내구성과 보존성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1377

[세계 최초 금속 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 제작]

고려 시대,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이 한지에 인쇄되었습니다. 이 또한 한지의 뛰어난 품질을 증명합니다.

고려 우왕 3년(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되었습니다. 이 귀중한 유물은 한지에 인쇄되었으며, 금속 활자의 섬세한 인쇄 기술을 견딜 만큼 한지의 재질이 우수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한지가 인쇄 기술 발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1400

[조선 조지서 설치, 한지 국가적 관리 시작]

조선 태종 대에 국가 기관인 조지서가 설치되어 한지의 원료 조달, 규격화, 품질 개량 등 한지 생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태종 재위 기간부터 한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지서(造紙署)라는 전문 기관을 설치하여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의 조달부터 종이의 규격화, 그리고 품질 개량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생산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한지의 안정적인 생산과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1800

['한지' 용어의 등장]

조선 시대 말엽, 서양식 기계 종이가 전래되면서 전통 종이와 구분하기 위해 '한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시대 말엽에 서양에서 들여온 기계로 만든 종이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한국 전통 종이와 이를 구분하기 위한 새로운 명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종이를 뜻하는 '한지'라는 용어가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전통 종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0

[근현대, 한지 명맥 단절 위기 봉착]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건축 양식 및 주거 환경 변화와 서양 종이의 대량 수입으로 인해 전통 한지의 생산과 사용이 급감하며 명맥이 거의 단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근현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산업화와 서구화의 영향으로 건축 양식과 주거 환경이 크게 변화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서양 종이가 값싸게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한지의 수요를 급격히 감소시켰고, 한지 제작 기술의 전승이 어려워지면서 한지의 명맥이 거의 단절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2005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전통 한지 제작 기술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한지장'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5년,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 한지 제작 기술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숙련된 한지 제작 장인을 '한지장'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했습니다. 이는 한지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국가적 노력의 일환입니다.

[류행영, 초대 한지장 보유자 인정]

류행영 장인이 초대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는 닥나무와 황촉규를 직접 재배하고 전통 방식 그대로 한지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2005년, 용인시에 거주하는 1932년생 류행영 장인이 초대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한지의 주요 원료인 닥나무와 황촉규를 직접 재배하는 등 한지 제작의 전 과정에 깊이 관여하며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한지를 제작해왔습니다. 특히 알칼리도가 높은 고추 줄기 재를 사용하는 등 독자적인 노하우를 축적했으며, 전통 외발뜨기 기술과 천연염료를 이용한 색지, 대형 초상화지 제작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10

[장용훈, 홍춘수 한지장 보유자 인정]

장용훈과 홍춘수 두 장인이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추가 인정되어, 전통 한지 기술의 보존에 힘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2010년, 장용훈 장인(1937년생)과 홍춘수 장인(1942년생, 임실군)이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추가 인정되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 한지 제작 기술을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2021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한지장 보유자 인정]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세 장인이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추가 인정되었습니다. 이 중 안치용은 초대 한지장 류행영의 제자입니다.

2021년, 김삼식 장인(1946년생, 문경시), 신현세 장인(1947년생, 의령군), 안치용 장인(1959년생, 괴산군) 세 명의 장인이 추가로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안치용 장인은 2013년에 작고한 초대 한지장 보유자 류행영의 제자로서 스승의 기술과 정신을 이어받아 한지 전통을 계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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