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한국 전통 악기, 관악기, 죽관악기, 공기울림악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30
피리는 한국의 전통 관악기로 대나무 몸통과 겹서를 특징으로 합니다. 향피리 세피리 당피리 대피리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쓰임새와 음색이 다릅니다. 고구려 시대 이전 서역에서 전해져 백제와 신라를 거치며 한국 음악의 중요한 악기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애절하고 목가적인 음색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BC 1C
[피리, 서역에서 고구려 유입 추정]
피리는 서역 지방에서 유래하여 고구려 시대 이전에 한국으로 들어온 악기로 추정된다. 《수서》에 따르면 구자국의 악기인 가관으로 불렸다.
피리는 서역 지방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악기로 추정된다. 고구려에 가장 먼저 유입되었으며, 이후 백제와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사서 《수서》에는 피리가 '가관'이라고도 불리며 본래 구자국(龜玆國)의 악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300
백제 시대에는 소피리(小)피리, 대피리(大)피리, 도피피리(桃皮)피리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피리 문화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1105
[당피리, 고려 예종 때 송에서 유입]
고려 예종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 당악 연주에 사용되는 당피리가 한반도로 전래되었다. 기존 향피리와 음률이 달라 구분되었다.
당피리는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들어온 악기로 기록되어 있다. 기존 향악에 쓰이던 향피리와 음률(황종=C)이 달라 당악기로 분류되었으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당피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당피리 유입 후 '향피리' 명칭 사용 시작]
고려 시대, 송나라에서 당피리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한국 피리를 구분하기 위해 '향피리'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에 송나라에서 당피리가 전래된 후, 기존에 사용되던 한국 고유의 피리와 구분하기 위해 '향피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이는 두 악기의 기원과 사용 음악이 달랐기 때문이다.
1493
[《악학궤범》, 향피리 8개 지공으로 묘사]
1493년 편찬된 음악 서적인 《악학궤범》에 현재와 동일하게 8개의 지공을 가진 향피리의 형태가 기록되었다.
조선 성종 24년(1493년)에 편찬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 이론서인 《악학궤범》에는 향피리가 현재와 같이 앞에 7개, 뒤에 1개의 총 8개 지공을 가진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이전 기록에는 7개 지공으로 소개된 바 있다.
[《악학궤범》, 당피리 지공 8개로 기록]
《악학궤범》에는 기존 9개였던 당피리의 지공이 뒤편 2개가 1개로 줄어들어 총 8개 지공을 가지게 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1493년에 편찬된 《악학궤범》에는 당피리가 이전의 《고려사》〈악지〉에서 소개된 9개의 지공에서 뒤편의 2개 지공이 1개로 줄어들어 총 8개의 지공을 가진 형태로 변경되었음이 묘사되어 있다.
1970
[1970년대 이후, 대피리 사용 시작]
1970년대 이후, 기존 향피리보다 크기가 큰 '대피리'가 새롭게 제작되어 국악 연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향피리보다 크고 낮은 음역을 가진 '대피리'가 개발되어 국악 합주 등 다양한 연주에 활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