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한국 전통 스포츠, 격투기, 무형문화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26
상고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 고유의 민족 스포츠 씨름! 고구려 벽화에서 기원을 엿볼 수 있으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역사를 이어왔다. 현대에는 공식 경기 규칙과 기술 체계를 갖추고 민족의 사랑을 받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풍년을 상징하는 황소를 부상으로 수여하는 특별한 경기다.
300
4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주의 고구려 고분 각저총에서 씨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씨름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400
[장천 1호 무덤 씨름 벽화 발견]
5세기 무렵에 지어진 장천 1호 무덤에서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어 고구려 시대 씨름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5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천 1호 무덤에서 씨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역시 씨름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1419
[태종과 세종, 강변에서 씨름 관람]
태종과 세종이 강변에서 씨름 경기를 관람한 기록이 남아있어, 왕실에서도 씨름이 주목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19년 6월 15일, 조선의 태종과 세종이 강변에서 씨름(각력희) 경기를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씨름이 왕실의 관심 속에서 향유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1430
[씨름 중 발생한 사망 사고, 관대히 처리]
1430년, 스님 상총이 씨름 중 상대방을 죽게 했으나 나라에서 죄를 묻지 않아, 당시 씨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1430년 12월, 상총이라는 스님이 씨름을 하다가 상대방이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나라에서는 관대하게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씨름 경기의 상황과 사회의 인정을 보여줍니다.
1451
[《고려사》에 씨름(각저) 기록 등장]
조선 세종 때 제작된 《고려사》에 씨름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여, 고려 시대부터 씨름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줍니다.
사서에 쓰여진 씨름에 관한 기록은 조선 세종 때 제작된 《고려사》(1451년 완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씨름이 고려 시대에도 중요한 문화적 활동이었음을 시사합니다.
1595
[이순신 《난중일기》에 씨름 등장]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씨름을 하거나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어, 전쟁 중에도 씨름이 즐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1592년~1598년 기록)에도 씨름을 하거나 구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씨름이 단순한 놀이를 넘어 민중들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664
[씨름 경기 후 살인 사건 발생]
1664년, 씨름 경기에서 패배한 사람이 상대방을 칼로 찔러 죽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 씨름의 과열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1664년 5월, 씨름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여 상대방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당시 씨름의 과열된 양상과 폭력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785
[김홍도 《씨름도》 제작]
단원 김홍도의 유명한 《씨름도》가 제작되어, 조선 후기 씨름이 대중적이고 활발한 여가 활동이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18세기 후반 활동)가 격렬하게 씨름하는 두 남자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씨름도》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조선에서 씨름이 매우 대중적인 경기였음을 시사합니다.
1870
[근대 씨름의 시작: 전조선씨름대회 개최]
조선프로씨름 협회가 수립되고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가 개최되며, 씨름이 근대 스포츠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870년 '조선프로씨름 협회'가 수립되고 같은 해 전조선씨름대회가 개최되면서, 씨름은 근대 스포츠로서의 발전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조선씨름 선수권대회 등 다양한 대회가 이어졌습니다.
1920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 씨름 경기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씨름이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스포츠로 발전했음을 의미합니다.
1922
[조선프로씨름 협회 재조직 및 선수권대회 중단]
1922년 조선프로씨름 협회가 재조직되며, 이후 1940년부터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가 중단됩니다.
1922년 조선프로씨름 협회가 변경(재조직)되었고, 이후 1940년부터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가 중단되는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1924
[한국프로씨름 협회 창립 (민속씨름)]
민속씨름 대회 개최를 위해 한국프로씨름 협회가 창립되며, 프로 씨름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합니다.
1924년 1월 1일, 민속씨름 대회의 개최를 목적으로 한국프로씨름 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프로 씨름의 발전과 부흥에 중요한 초석이 됩니다.
1945
일제강점기 동안 1940년부터 중단되었던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가 해방 이후인 1945년부터 다시 개최되기 시작하며, 아마추어 씨름의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1964
1964년에 대통령기 씨름 대회가 신설되어 아마추어 씨름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제공하고, 씨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1971
1971년에 회장기 씨름 대회가 신설되어 아마추어 씨름 대회의 수를 늘리고, 더 많은 선수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1985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 개최 및 프로 스포츠 출범]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개최되며, 씨름이 대한민국 제2호 프로 스포츠로 화려하게 출범합니다.
1985년 6월 14일,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씨름은 우리나라 제2호 프로 스포츠로 공식 출범하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양대 씨름 협회 통합]
재정난을 겪던 조선프로씨름 협회가 한국프로씨름 협회와 통합하며, 프로 씨름의 운영 체계가 재편됩니다.
1985년 10월 9일,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조선프로씨름 협회'가 '한국프로씨름 협회'와 통합되었습니다. 허완구 회장이 통합 회장을 맡아 조선프로씨름 협회를 운영하고, 민속씨름은 '프로씨름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민속씨름 체급 명칭 공모 및 선정]
한국프로씨름 협회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체급 명칭을 공모하여, '지역장사', '한라장사', '백두장사' 등 현재 사용되는 명칭들이 선정됩니다.
1985년 12월 19일부터 31일까지, 한국프로씨름 협회는 민속씨름대회 출범을 앞두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체급 명칭을 공모했습니다. 이 공모를 통해 '지역장사', '한라장사', '백두장사', '단체전'이라는 명칭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1992
[사단법인 한국프로씨름 협회로 명칭 변경]
한국프로씨름 협회가 사단법인 한국프로씨름 협회로 명칭을 변경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1992년 10월 29일, 한국프로씨름 협회가 사단법인 한국프로씨름 협회로 명칭을 변경하며, 조직의 안정성과 위상을 강화했습니다.
2000
2000년에 증평인삼배 씨름 대회가 신설되어 아마추어 씨름 경기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지역 기반 대회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2004
2004년에 학산김성률배 씨름 대회가 신설되어, 아마추어 씨름 경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선수들에게 경쟁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