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
음식, 요리, 조리법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4- 23:47:52
튀김은 식재료를 기름에 고온으로 가열해 독특한 맛과 식감을 선사하는 요리입니다. 그 기원은 고대 로마와 포르투갈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대항해시대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가 피시앤칩스 감자튀김 덴푸라 프라이드치킨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20세기 식용유 대중화로 누구나 즐기는 글로벌 간식 겸 요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00
[로마 제국의 올리브 숲 조성]
로마 제국이 이베리아 반도에 올리브 숲을 조성하여 풍부한 식용유를 공급하며 튀김 요리 문화 발달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이베리아 반도에 올리브 숲을 대규모로 조성하여 식용유 공급의 핵심 기지로 활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 지역은 올리브 오일이 풍부해졌고, 이는 튀김 요리 문화가 발달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중세 지중해 연안 지역에도 올리브 오일 생산이 활발하여 튀김 조리법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1450
[포르투갈의 유럽 최초 생선 튀김]
해양 강국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생선을 기름에 튀겨 먹기 시작하며 튀김 요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포르투갈은 풍부한 해산물을 활용하여 유럽에서 가장 먼저 생선을 기름에 튀겨 먹는 조리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의 오랜 튀김 문화와 포르투갈의 올리브 오일 생산 능력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1570
[일본 덴푸라의 탄생]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통해 '필레테스'라는 튀김 요리법을 전래하며, 일본의 독자적인 튀김 요리인 덴푸라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6세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나가사키 항구를 통해 음식 재료를 기름에 튀기는 포르투갈 요리 '필레테스'를 일본에 소개했습니다. 이 조리법은 에도(현재의 도쿄)에 전파되어 덴푸라라는 이름으로 정착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포장마차에서 판매되는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1580
[펠리페 2세의 탄압과 튀김 문화 확산]
1580년 스페인의 포르투갈 병합 후 펠리페 2세의 종교 탄압으로 유대인들이 유럽 각지로 이주하며 포르투갈의 독특한 튀김 문화가 영국, 벨기에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580년,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병합하고 통합 군주가 된 펠리페 2세는 이교도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습니다. 이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많은 유대인들이 영국, 스코틀랜드, 벨기에, 네덜란드 등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에서 발달했던 튀김 문화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650
[미국 프라이드 치킨의 기원]
포르투갈 노예상들을 통해 서아프리카로 전해진 튀김 문화는 흑인 노예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포르투갈 노예상들에 의해 튀김 조리법이 서아프리카 지역에 전파되었습니다. 이후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이 튀김 문화가 미국에 정착하여 오늘날 대표적인 미국 요리 중 하나인 프라이드치킨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680
[벨기에 감자튀김(프렌치 프라이)의 기원]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튀김 문화가 벨기에 지역에서 감자를 길게 튀겨 먹는 방식으로 발전하여, 1680년대 이전에 오늘날의 프렌치프라이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플랑드르(현 벨기에 인접 지역)에서는 1680년대 이전에 이미 감자튀김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물고기 대신 썰어 튀긴 감자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전파한 튀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 프렌치프라이의 원조가 탄생했습니다.
1839
[영국의 피시 앤 칩스 기원]
영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전파한 생선튀김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언급될 정도로 대중화되어, 훗날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 피시 앤 칩스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17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 출신 유대인들이 영국에 생선튀김을 전했으며, 초기에는 주로 노점에서 판매되었습니다. 1839년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생선튀김 가게가 언급되어 당시의 대중성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생선튀김이 감자튀김과 결합하여 현대의 피시 앤 칩스로 발전했습니다.
1856
[식용유 용매추출법 개발]
1856년 영국에서 식용유 용매추출법이 개발되어 기름 생산 효율이 크게 증가하며, 식용유 대량 생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산업혁명과 인구 증가로 식용 및 공업용 기름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 1856년 영국에서 용매추출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기존의 곡물씨앗 분쇄압착 방식보다 기름 수율을 현저히 높여, 식용유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11
[P&G의 쇼트닝 대량 생산과 식용유 대중화]
1911년, 미국 P&G사가 면실유 기반의 식용 쇼트닝을 대량 생산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는 일반 가정에서 튀김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용유 대중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식용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동물성 기름 생산의 한계와 낮은 착유 수율로 가격이 높았습니다. 1911년, P&G는 용매추출법을 활용해 면실유를 반고체화한 식용 쇼트닝을 대량 생산하여 저렴하게 판매했습니다. 이로 인해 식용유가 대중화되며 일반 가정에서도 튀김 요리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53
[한국의 밀가루 대중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 물자로 밀가루가 대량 유입되면서, 과거 귀한 식재료였던 밀가루가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대중적인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밀 생산량이 적어 밀가루가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의 무상원조와 유상수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면서 밀가루가 대량으로 보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수, 빵, 수제비, 칼국수 등 밀가루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서민들에게 보편화되었습니다.
1970
[한국 튀김 요리의 대중화 시작]
1970년대 초반부터 식용유 가격 하락과 밀가루 보급에 힘입어 한국 사회에서 튀김 요리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은 국내에서 콩기름 대량 생산으로 식용유 가격이 저렴해지고,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가 대중적인 식재료로 자리 잡은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서민들도 쉽게 튀김 요리를 접하고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튀김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1971
[사조해표의 국내 최초 콩기름 대량 생산]
1971년, 사조해표의 전신 동방유업이 국내 최초로 용매추출법을 이용한 콩기름을 대량 생산하며 식용유 가격을 낮춰, 한국 서민들도 튀김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60년대 한국에서는 식용유 수요가 늘었지만 낮은 자급률로 인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여 가격이 높았습니다. 1971년, 동방유업(현 사조해표)이 국내 최초로 용매추출법을 활용해 콩기름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식용유 가격이 저렴해졌고, 이로 인해 일반 가정에서도 튀김 요리가 가능해지는 대중화의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1980
[한국 후라이드 치킨 전문점 등장]
1980년대, 국내 대규모 기업형 양계가 시작되며 육계 품종 사육이 활성화되자, 한국에서도 후라이드 치킨 전문점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한국에서는 외래종 식용 육계 품종의 대규모 기업형 양계 산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닭고기 공급을 안정화하고 가격을 합리적으로 만들었으며, 그 결과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 문화가 유입되어 전국적으로 후라이드 치킨 전문점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