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음식, 조미료, 발효 식품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01:02:48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동아시아의 핵심 조미료. 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흑갈색 액체로 단순한 짠맛을 넘어 깊은 감칠맛을 선사한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왕실과 백성의 식탁에 오르며 문화와 함께 발전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K-소스 간장의 다채로운 매력을 탐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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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헌 《주례》에 '장' 한자 최초 기록]
중국의 고대 문헌인 《주례》에 '醬(장)'이라는 한자가 처음 기록되었으며, 이때 '장'은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다양한 조미료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는 간장의 중국 기원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이다.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쓰여진 중국의 고대 예서(禮書)인 《주례》에 '醬(장)'이라는 한자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장'은 고기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조미료를 포함하여, 소금물에 발효시킨 다양한 조미료를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오늘날 간장의 원형인 발효 조미료의 기원이 중국에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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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국시대 이전 두장 담가 먹기 시작]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간장과 된장이 분리되지 않은 걸쭉한 형태의 '두장'을 담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 장류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콩을 이용한 발효 조미료를 만들어 먹었으며, 당시에는 간장과 된장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섞여 있는 걸쭉한 형태의 '두장'을 주로 섭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전통 장류 문화의 오랜 역사를 방증하는 초기 단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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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고구려의 장 담그는 기술 기록]
중국 《삼국지》 위서 고구려 편에 '고구려가 장양(贓釀: 장 담그기, 술 빚기 등의 발효식품 제조)을 잘한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고구려의 뛰어난 발효식품 제조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의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고구려 편에는 '고구려가 장양(贓釀), 즉 장을 담그고 술을 빚는 등 발효식품 제조에 능숙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고구려 시대부터 이미 장류 제조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며, 한국 발효식품 문화의 오랜 역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문헌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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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에 장독대 등장]
4세기에 지어진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벽화에 우물가에 장독대가 그려져 있어, 당시 고구려에서 장류를 담가 먹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4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벽화에는 우물가에 여러 개의 장독대가 나란히 그려진 모습이 발견된다. 이는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간장과 같은 장류를 직접 만들어 저장하고 식생활에 활발히 이용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유의미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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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국시대 간장-된장 분리 기술 발전]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르러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여 담그는 기술이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 장류 문화가 더욱 세분화되고 정교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에서는 이전의 두장 형태에서 벗어나, 간장과 된장을 각각 분리하여 제조하는 기술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각 장류의 고유한 맛과 활용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전통 식문화의 중요한 진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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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폐백에 간장 포함]
《삼국사기》에 신라 신문왕이 왕비 폐백 음식으로 장(醬), 메주(皼), 해(醢, 젓갈)를 준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간장이 왕실의 중요한 의례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문왕 3년 2월 봄, 신문왕이 내물왕의 8세손인 일길찬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이할 때 폐백 음식으로 장(醬), 메주(皼), 해(醢, 젓갈)를 올렸다는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다. 이는 신라 시대에 간장이 왕실 혼례와 같은 중요한 의례에서 필수적인 식품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1018
[고려 현종, 거란 침략 시 백성에게 간장-된장 지급]
《고려사》에 고려 현종 9년 거란의 침략 당시 굶주린 백성에게 간장과 된장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장류가 구황식품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식화지〉에 따르면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 거란의 침략으로 인해 백성들이 굶주리자 조정에서 간장과 된장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장류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백성들의 생존을 돕는 구황식품이자 중요한 식량 자원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1052
[고려 문종, 기근 시 백성에게 간장-된장 지급]
《고려사》에 고려 문종 6년 기근 때도 굶주린 백성에게 간장과 된장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확인되어, 장류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려사》 〈식화지〉에는 고려 문종 6년인 1052년에 발생한 기근 상황에서도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간장과 된장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고려 시대에 장류가 백성들의 필수적인 영양원이자 국가 비상식량으로 꾸준히 활용되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1527
[《훈몽자회》에 한글 '간장' 표기 등장]
조선시대 《훈몽자회》에 한글로 ''이라는 표기가 등장하여, 당시 간장이 한글로 어떻게 발음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527년에 최세진이 저술한 조선시대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에는 한글로 ''이라는 표기가 실려있다. 이는 당시 간장이라는 단어가 한글로 어떻게 표기되고 발음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언어학적 자료이며, 간장이 이미 대중적으로 사용되던 식품이었음을 시사한다.
1600
[조선시대 문헌, 장 제조법 상세히 기록]
조선시대에는 《구황촬요》와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장을 잘 담그는 방법이 상세하게 제시되었으며, 이는 장류 제조 기술이 고도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구황촬요》의 조장법(造醬法) 항과 《증보산림경제》의 장제품조(醬諸品條) 등 다양한 문헌에서 장을 맛있고 효율적으로 담그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장류 제조 기술이 조선 시대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으며, 체계적인 지식으로 전승되었음을 증명한다.
1670
[《음식디미방》 저술, 간장 제조법 기록]
조선 현종 11년, 정부인 안동 장씨가 《음식디미방》을 저술했는데, 이 조리서에는 간장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 현종 11년인 1670년, 경상북도 안동에 살던 정부인 안동 장씨(장계향)가 저술한 한국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간장과 관련된 제조법 및 활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조선 시대 가정에서 간장을 어떻게 만들고 요리에 활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 자료이다.
1809
[《규합총서》 저술, 간장 제조 및 관리법 상세 기록]
순조 9년,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아녀자를 위한 생활백과 《규합총서》를 엮었는데, 여기에는 장 제조법뿐만 아니라 장 담그는 날 택일법, 금기사항, 보관관리법 등 간장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조선 순조 9년인 1809년,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아녀자들을 위해 편찬한 생활백과서인 《규합총서》에는 장 제조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장 담그는 날을 택하는 방법, 금기 사항, 그리고 보관 및 관리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당시 간장 제조가 단순한 요리를 넘어 생활 전반에 걸쳐 중요하게 다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